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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31권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65 - 9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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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구축된 ‘한국사상 관인ㆍ관직DB’를 활용하여 신라하대 문한직의 변화 과정을 추적ㆍ정리하고, 문한관의 활동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신라는 삼국통일전쟁 전후 시기에 문한관을 두었다. 이 때 문한관인 상문사는 외교문서 작성이나 외교사행 파견은 물론 문한관 양성을 위한 교육도 담당하였다. 상문사의 직임은 그 뒤 통문박사, 한림대로 각각 개칭되면서 계속 이어졌다. 혜공왕대 이후 한림대의 직제는 더욱 다양해졌다. 특히 경문왕 말년 이후 헌강왕대까지 근시기구에 소속된 관인은 문한관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였다. 그들은 국왕의 명령을 받아 여러 비명과 기문을 작성하는 한편으로 국왕의 경연을 담당하면서 국왕의 교서를 작성하였고, 중앙관부와 지방관서의 요직을 맡았다. 문한직은 외교문서와 외교사절의 고유 업무 이외에 국왕의 측근 관료로 기능하였다. 885년 이후에 한림대를 개편한 서서원이 다시 문한관의 역할을 회복하여 비명과 기문 찬술을 전담해 나갔다. 서서원의 관인은 근시직으로 국왕의 측근 관료로 활동하면서 문한직과 함께 중앙관서와 지방관서의 실무직을 맡아 정치적 주도권을 잡아 나갔다. 이러한 모습은 정강왕대 이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헌강왕은 선왕인 경문왕처럼 측근 관료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경문왕은 왕손과 함께 근시직 문한관을 중앙관서의 차관직이나 지방관서의 장으로 임명하여 측근정치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헌강왕 말년에 이들이 대개 사망하자, 헌강왕은 보다 축소된 세력을 중심으로 왕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서원 중심으로 문한직을 개편하고, 문한관에게 중앙관서의 차관직이나 지방관의 장을 겸직시켜 왕권을 강화하였다. 이 때 김원, 최치원, 박인범 등의 유학지식인은 국왕의 측근관료로 활동하면서 육두품 출신의 신분적 기득권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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