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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68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57 - 38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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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은 세종과 문종 대에 이루어진 학문, 문학, 서적출판 등 국가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종과 문종은 국가 운영의 원리를 유학에 두면서도, 궁중과 민간의 요청을 수렴하여 불교를 병존시키는 정책을 썼다. 이때 안평대군은 왕실의 불사를 주재하고 사대부와 민간의 불사에도 조력했다. 세종 말 원각사중찬회에서는 수양대군과 함께 세세한 의식을 결정하고 금니경을 제작했고, 1447년 황학산 직지사에서 밀교의 고려경전 『현행서방경』을 목판으로 인쇄할 때 권화인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448년(세종 30) 4월, 효령대군의 발원으로 『묘법연화경』을 간행할 때에는 발문을 작성했다. 안평대군이 1450년 7월 하순 엄(嚴)상좌를 전송하면서 증여한 글의 서첩, 즉 「재송엄상좌남귀서(再送嚴上座歸南序)」라는 글을 행서체로 쓴 서첩이 최근 경매에서 공개되었다. 이 글은 목판본으로 간행되어 국내의 두 곳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서첩은 판하(板下)의 원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안평대군은 이 글에서 자신이 수암대화상(秀菴大和尙)을 섬겨서 반야(般若)의 대의(大義)를 수업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안평대군과 불교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조선 초 궁실 및 지식인 집단과 승단의 네트워크를 파악하는데 이보다 더 귀중한 자료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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