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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77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213 - 255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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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선조 26) 10월 유성룡이 영의정에 임명된 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 중 하나가 강화교섭에의 대응이었다. 일본군이 같은 해 4월 부산 동래 등 남해안으로 후퇴했고, 경략 송응창 등은 일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과의 강화교섭을 선택했다. 선조는 명군과 협공하여 일본군을 패퇴시키기를 원했으나, 이는 송응창의 계획과 달랐다. 선조는 강화반대의 입장을 바꿀 수 없었고, 유성룡은 영의정에 임명된 이후에도 선조의 반대 원칙을 따라야 했다. 그럼에도 그가 중시했던 점은 조정 내 강화 반대 분위기를 따르면서, 명의 군사적 지원을 유지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영의정 유성룡의 조정작업과 설득은 그만큼 신중해야 했다. 기존의 연구성과에서 유성룡은 강화를 주장하여 나라를 그르친 인물 즉, ‘主和誤國’이라는 비난을 받았다는 측면으로 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유성룡과 강화교섭의 문제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영의정 유성룡이 강화교섭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과 조정 내 논의를 수렴하는 과정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유성룡이 강화교섭 논의에서 어떤 논리로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에 관한 서술이 구체적이고 집중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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