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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69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81 - 41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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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제주도 대정현 5개 마을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18세기 후반 주민의 계층은 幼學類(1계층), 校生類 및 武科關聯 (2계층), 軍官職⋅假率⋅鄕吏職 등(3계층), 下級胥吏⋅官廳直⋅軍兵⋅下層良 人(4계층), 奴(5계층)로 구성되었다. 주민 가운데 公奴婢가 50% 이상 차지하는 마을도 있었다. 하모슬리와 사계리 남성의 계층구조는 18세기 후반∼20세기 초 사이에많은 변화를 겪었다. 19세기 두 마을에 살던 사람들과 조상의 계층이 상이한 경우가 많았다. 1계층이라 해서 후손이 조상의 계층을 자동으로 세습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상보다 하위 계층으로 추락하는 후손도 적지 않았다. 2계층 또한 후손이 조상의 직역을 자동으로 세습하는 것은 아니었다. 2계층에서도 조상보다 하위 계층으로 추락하는 후손이 적지 않았다. 3계층 앞에는 튼튼하고, 높이 올라가는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늘 놓여있었다. 3계층은 19세기 들어 대체로 조상의 직역을 세습하는 사람보다 조상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후손들이 많았다. 4계층 또한 19세기 들어 대체로 조상의 직역을 세습하는 사람보다 조상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후손들이많았다. 5계층 후손 또한 19세기 들어 계층을 상승시켰다. 그러나 20세기초까지 조상들의 계층은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2⋅3⋅4⋅5계층 후손들의 평균 지위가 20세기 초까지 끝내 역전되지 않았다. 1918년 두 마을 주민 또한 밭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두 마을 주민의토지소유 규모 또한 조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戶당 토지소유규모의 多 寡는 18세기 조상이 가졌던 계층의 高下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1계층 후손의 토지가 가장 많고, 5계층 후손의 토지가 가장 적다. 하지만 1인당 토지소유규모의 多寡는 18세기 조상이 가졌던 계층의 高下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한편 호당 토지 소유규모는 조상이 호적에 출현하는 시기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즉 18세기에 출현한 가계의 후손들이 가장 넓은 토지를 소유했고, 20세기에 출현 가계의 후손들이 가장 적은 토지를 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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