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49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141 - 180 (4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연행록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자미상의 『燕行錄』을 살펴본 것이다. 이 연행록은 고 유탁일 교수의 소장본으로 1983년 학계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작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연행록의 자료적 가치는 근래 국내를 넘어서 국외의 학자들에게까지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학계의 연행록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특정 연행록에만 집중되어 연행록 양식 내지 연행록의 역사에 대한 통시적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연행록은 1894년 마지막 사행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 당시 동아시아 정세의 격변으로 인해 이들 사행단은 이전과 다른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그 견문의 기록 또한 연행록의 역사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연행록』에 담겨 있는 몇 가지 단서들을 기반으로 추적한 결과 작자는 金東浩(1860~1921)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동호는 進賀兼謝恩使行團의 부사 閔泳喆을 수행하여 북경에 다녀왔다.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경장 등 국내외 상황의 변화로 인해 그가 속한 사행단은 극심한 혼란과 고초를 겪었다. 김동호의 『연행록』은 사행수단의 진화, 정보습득 방법의 변화, 그리고 시대변화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생성된 기록물이란 점에서 특징적이다. 사행단은 이전과 다른 노정으로 기차와 기선을 타고 이동했으며, 전신체계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또한 북경 체재 중엔 당시 동아시아정세에 관한 정보들을 근대적 신문을 통해 습득하였다. 하지만, 사행단에게 새로운 변화가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사행단은 1894년 6월에 출발하여 이듬해 5월 3일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 사이 청일전쟁의 결과로 청과의 외교관계는 변화하였다. 이에 따라 대청사행은 역사적 소임을 마치게 된다. 또 사행의 부산물인 연행록도 종언을 고하게 된다. 마지막 대청사행단이 돌아온 1895년은 공교롭게 兪吉濬(1856~1914)의 『西遊見聞』이 출판된 해이기도 했다. 전근대 지식인들의 선진문물 수용의 통로였던 연행록이 그 수명(시대적 효용)을 다하는 순간, 서구 신문화의 첨병이 된 새로운 기록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연행록 양식이 그 소임을 다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연행록 전반에 대한 통시적 검토는 충분히 이루어지 않았다. 이 연행록에 대한 검토는 연행록의 역사 끝자리에 놓이는 자료의 검토로서 이에 관해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63)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