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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46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179 - 21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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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탑가람의 출현은 신라 불교건축 역사상 가장 특징적인 변화이다. 지금까지 신라 쌍탑가람이 출현하게 된 배경을 「법화경」의 「견보탑 품」 근거로 해석해 왔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를 확증할만한 증거자료는 확보되지 않았다. 오히려 「법화경」과의 관련성을 뒷받침해주던 경주 불국사 쌍탑의 석가탑과 다보탑이 최근 공개된 석탑 중수문서를 통해 창건당시의 명칭이 아니라 후대에 변화된 명칭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법화경」과의 관련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형식의 변화라는 것은 변화된 의식을 반영한 결과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쌍탑가람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출현은 7세기 후반 신라 불교신앙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신라 쌍탑가람의 성립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인물은 사천왕사를 창건한 명랑법사와 불교미술의 새로운 양식을 선도했던 예술가 양지스님이다. 금광사(金光寺)와 사천왕사(四天王寺)의 창건을 통해 드러난 사명랑법사의 신앙은 「합부금광명경」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확인된다. 「합부금광명경」은 7세기 중엽이후 신라 호국불교를 주도했던 소의경전으로 시기적으로 쌍탑가람 성립기와 맞물리는 경전이다. 쌍탑가람의 출현과 관련하여 「합부금광명경」의 내용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三身分別品」과 「捨身品」이다. 쌍탑가람의 금당과 두 탑은 삼신(三身)을 상징하는 건축으로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례로 7세기 중엽에 제작된 일본 호류지(法隆寺) 옥충주자(玉虫廚子)에 그려진 영축산정토도는 「삼신분별품」에 근거한 도상으로 쌍탑가람을 회화로 표현한 것에 다름없다. 그리고 기존 「법화경」 관련설의 입장에서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았던 다보불탑의 사리봉안 문제의 취약성과 비교하여 「사신품」은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별도의 불탑이 공존할 수 있다는 교리적 근거를 제시해 준다. 쌍탑가람의 출현과 맞물려 신라의 주요 가람배치 형식이었던 일탑삼금당가람이 소멸되고 사리기의 형식이 변화되는 현상을 통해 불탑이 여래의 묘처(墓處)라는 전통적인 관념에서 점차 여래의 주처(住處)의 개념으로 전환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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