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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과학원 개념과 소통 개념과 소통 제4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97 - 13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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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신문 매체가‘동양’개념을 의미화했던 과정을고찰했다. 청일전쟁 이전 조선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마찰과 대립이 지속되고있는 상황에서 삼국의 연대구상은 침략에 대한 공동방어라는 전략적 차원의 성격이 강했고, 지역, 인종, 문화 등 동질성에 대한 상상은 막연하게 존재했지만, 아직명확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다. 청일전쟁 이후 서양열강의 중국 분할과 러시아의 만주 점령이 진행되자, 지식인들은 당시의 국제질서를 인종경쟁으로 보았고, 동양 삼국의 연대구상에 큰 관심을갖기 시작했다. 1893년 다루이 도키치(樽井藤吉)의『대동합방론』이 국내에 소개되어 유행했던 것도 이때였다. 다루이 도키치는 침략적인 속성을 가진 서양과 대비하여 유교적 가치인 인과 덕으로 동양을 표상하였다. 그리고 언어·민종·습속의동질성으로 조선과 일본을, 황인종과 유교의 동질성으로 조선·일본·중국을, 황인종의 동질성으로 동남아시아를 포함하는,‘동양’내부의 동질성을 중층적으로 구상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 그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독립신문』과 안경수(安􄤝壽) 등 문명개화론자는 황인종의 특성 또는 풍속의 미개함으로 자신들이 속한‘동양’을 의미화하지 않았다. 그들의‘동양’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워 공동방어의 이해를 가진 단위로서의 의미가 강했다. 동양 삼국의 동질성은 전략적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구성원을 설득하기 위한 동질감 그 이상으로강조되지 않았다. 유교를 토대로 서양문명의 수용을 주장했던 개신유학계열의『황성신문』은 유교를보편문명으로 끌어올렸고, 이를 통해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했다. 유교적 가치가 매체를 통해 확산되면서 대한제국 구성원의 뇌리에 자리했던 유교적 가치가공론의 장으로 소환되었다. 서양과 동양의 대결, 백인종과 황인종의 대결 구도는서양문명과 동양문명(유교문명)의 대결 구도로 확장되었다. 일본의 조선침략이 가속화될수록『황성신문』의 유교적 가치 역시 더욱 강조되었다. 유교의 가족규범에 의거하여 일본의 악행을 비판하였으며, 유교의 이상사회였던‘대동’사회에 대한 상상은 국가적 경계를 넘어 동양 그리고 세계로 확장되고 있었다.『 황성신문』의‘同文’은 동양의 동질감을 표현하는 것에서 동양적 가치를 표상하는 의미로 확장되었고,이로써‘동양’은 유교적 가치를 계승하여 발전시켜야 할 단위가 되었다.『 황성신문』의‘동양’개념이 매체를 통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동양’은 대한제국 사회 구성원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규범적 가치를 갖는 개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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