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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유학연구 제38권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83 - 21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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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은 중암 김평묵과 오남 김한섭의 제자로서 화서학파의 학맥을 계승한 학자로 평 생동안 위정척사, 존화양이의 의리사상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부적으로 시재가 있었으며 수많은 한시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의 시에는 향토성이 짙은 작품이 많 으며 자신의 포부와 위정척사의 의리 정신이 관철되어 있었다. 본고는 한시에 투영된 위 정척사 정신을 살펴보았다. 첫째로 구한말에 김영근이 서양열강과 일본의 계략적으로 침탈당하는 나라의 현실을 걱정하는 면모를 분석하였다. 그는 국난을 구제해줄 영웅이 나타나주기를 바랬고, 외세 에 맞서 싸워 일본과 서양세력을 척결하려는 위정척사의 정신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외 세에 대한 적극적인 배척은 도학의 존망이 달려 있다는 화이론적 관점에서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둘째로 을사늑약 이후에 김영근이 한반도를 유람하면서 일본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 로 조선을 침탈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분개한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일본군 병참 이 설치되고 일본인들이 조선 경제를 침탈하는 모습을 보고 나라가 장차 처할 운명에 대 해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의병을 통해 척결하려는 의기를 표출하기도 하였다. 셋째로 김영근이 일제치하에서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고향을 떠나 해외로 가려고 한 사실을 분석하였다. 조선의 선비로서 일본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한 그는 고향을 떠나려고 했지만 노모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견디며 살아갔다. 결국 노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 가족을 거느리고 간도에 갔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1년 만에 돌아와서는 은둔하여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탐구하며 광복을 기다렸다. 넷째로 김영근이 서구 문화 유입으로 일어난 세태 변화에 대한 비판과 사도를 고수하는 면모를 분석하였다. 일본 관리가 부자들의 횡포를 방관하고 양반출신 여자들이 장사에 나서는 세태에 대해 비판했으며, 이혼가정이 늘고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등 전통적 가족 제도가 무너지는 현상을 지적했다. 그래서 금수 사회로 떨어진 것을 향상시키기 위해 유교적 질서의 회복을 강조했으며 위정척사 존화양이의 의리 실천을 통해 사도(斯道)를 고 수하였다. 이와 같이 김영근의 한시에 투영된 위정척사의 정신은 그가 철저하게 화서학파의 의리 사상을 실천하며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의 한시 세계는 일제 강점기를 살아 가야만 했던 전통지식인들의 삶과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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