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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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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50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225 - 24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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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시대 국왕의례 가운데 하나인 강무(講武)에 대한 연구이다. 강무는 오례(五禮) 가운데 하나로서 군례(軍禮)에 속하는 의례이다. 국왕이 직접 행하는 이 강무 의례는 국가를 무(武)로써 지켜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의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전기에 활발하게 시행되었던 이 의례가 조선 중기로 오면 급격하게 시행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국왕의 의례 가운데에서도 핵심적인 의례라고 볼 수 있는 강무 의례가 이렇게 드물게 시행된 배경에는 국왕의 위상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강무는 사냥을 하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군사 훈련의 성격이 강하였고, 국왕이 주체가 되어 위엄 있게 치러진다면 그만큼 국왕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측면이 강했다. 강무가 줄어드는 데는 바로 이러한 것이 이유가 될 수 있다. 즉 무(武)적인 요소보다 문(文)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사림의 등장과 그에 따라 국왕에게 성리학적 교양이 요청된 점이 중요한 변화의 요인이었다. 여기에 더해 장기간에 걸친 평화가 지속된 점도 배경이 된다. 조선후기에는 강무가 조선전기에 사냥과 군사훈련이 결합된 형태와는 다르게 사냥이 생략된 채로 열무(閱武) 위주의 행사로 치러졌다. 또 이는 국왕의 행차인 능행(陵幸)과 연결되었다. 이런 점은 영조와 정조 같은 탕평국왕들이 조선 초의 제도 회복을 통해 국왕의 권위를 높이려고 하였던 지향과 연결된다. 다만 조선 초의 제도와 반드시 같아질 수 없었던 것은 역시 조선 중기를 거치며 강무 제도 자체가 약화된 점에서 기인하며, 이를 완전하게 회복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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