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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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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9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377 - 40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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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풍수학은 성리학으로 인해 미신적이라 판단하여 멸시하기도 하였으나 전반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행되었다. 성리학적 자연관과 인간의 조화 및 부계원칙의 사회관을 유지하기 위해서 풍수학을 활용하였다. 조선후기의 지방사족과 백성에게도 풍수가 유행하여 풍수의 영향력은 확대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를 통해서 조선전기 중앙의 풍수담론은 지맥을 중심으로 풍수서책을 인용하여 해석하였다. 조선중기 사림세력의 강화와『주자가례』에 의한 의식화를 위해 적장자 권위유지의 수단으로 풍수학을 이용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풍토로 인해 사대부 및 백성도 천장을 많이 행하게 되었으며 사회적인 폐단으로 이어졌다. 또한 ‘효’이데올로기의 사회적 확산과 조상에 대한 엄격한 의식화와 친족강화를 위해 음택풍수의 담론이 성행하였다. 조선후기 풍수풍토의 사례지로 소개한 정씨 문중 선산은 경북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위치한 야곡산에 있다. 이 야곡산은 팔공지맥의 서쪽 끝단에 위치하며, 주산이산을 통해 내려오는 내룡이 야곡산에서 현무정을 만든다. 야곡산은 풍수학에서‘야자형국(也字形局)’으로 분류되고 훌륭한 문장가를 배출한다고 해석한다. 야곡산의 청룡은 내청룡과 외청룡으로 분화하고 입향조는 중출맥의 우측 가지맥이 내려온 선상에 입지하였다. 산의 배면개념이 충실하게 반영한 장소로서 절묘한 위치이다. 이후 후손의 묘역은 적장자의 위계에 따라 차등적으로 조성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후기에 선택된 특정 문중의 묘역에서 유교적 효사상의 유지와 친족의 강화를 위해 풍수학이 적극 활용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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