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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69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467 - 49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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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회사라는 특성을 지닌 만철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정보선전활동이 적극적으로 시행되었다. 1923년 만철은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하는 정보계를 서무부 조사과에, 홍보,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홍보계를 사장실 직속으로 설치하면서 정보선전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를 설립하여 정보선전활동을 시작하였다. 홍보계의 초기 업무는 신문 잡지를 통해 회사의 사업을 선전하는 것이 주가 되었고, 회사 내 홍보 업무의 실시 기관에 대해 홍보 자료와 기타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이후 점차 조직의 내실이 기해짐에 따라 다양한 매체를 통한 직접 선전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1931년 9월에 발발한 만주사변은 만철이 홍보계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정보선전활동을 전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홍보계는 기록영화 제작, 일본 내지로의 선전반 파견, 간행물의 제작 배포, 사진 촬영 및 제작 등을 통해서 관동군의 군사행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1932년 3월, 건립된 만주국은 그 건국과 존재의 정당성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아야 했기에, 만주국에 있어 정보선전공작은 더없이 중요한 것이었으나, 만주국 초기의 정보선전정책을 추진할 정부기구들이 가지는 한계로 인해, 만주국에서는 특히 초기 정보선전공작의 상당 부분을 만철에 의존하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1936년 10월 1일, 만철은 창업 이래 대규모의 직제 개정을 단행하였는데, 이때 정보와 선전업무를 일원적으로 담당하게 되는 홍보과를 신설하였다. 홍보과는 서무, 홍보 제1, 홍보 제2, 정보 제1, 정보 제2의 다섯 개 분과로 구성되어 각 업무를 분담하였고, 이러한 大連에 있는 본사의 홍보과를 중심으로 만주국, 일본 내지, 중국 내지, 파리, 뉴욕에 이르기까지 만철은 광범위한 정보선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1937년 만주국에서는 정보선전정책을 일원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홍보처가 설립되었다. 홍보처 신설 이후에도 홍보과를 중심으로 한 만철의 정보선전활동은 이전 홍보계에서 추진했던 정보선전활동과 연속성을 지니면서 지속되었다. 만철 홍보과는 만주국 홍보처와의 제휴 협력 하에, 만주국의 국책에 따라 만주국의 괴뢰성을 지우고, 「오족협화」, 「왕도낙토」의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선전하는 만주국의 홍보에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만철의 정보선전활동에서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는 당시의 모든 미디어를 총동원하였다는 점에 있다. 선전의 중요한 매체였던 신문, 영화, 라디오는 물론 팜플렛, 단행본, 잡지의 출판, 그림엽서, 포스터, 카다로그, 카렌더, 종이인형극 등의 제작․배급, 사진전시회, 저명작가와 평론가 초청 강연회 개최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다방면에 걸친 선전공작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만철의 축적된 정보선전활동의 기술과 경험은 만주사변에서 그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만주국이 건립된 이후에도 이러한 형태의 정보선전공작은 지속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해외사무소의 설치와 그것을 통한 대외 정보선전활동이었다. 만철은 1922년 미국 뉴욕에 사무소를 설치하였고, 파리에는 1929년 사원을 파견하였다가 1934년 파리사무소로 승격시키고 1937년에는 구주사무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들 해외사무소에서도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미국, 유럽의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사변에 있어서 일본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악화된 대일여론을 호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모색하여 정보선전공작을 전개하였다. 즉 해외사무소 역시 만철이 가진 강력한 조사 정보기관이자 선전기관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만철이 정보선전활동에서 축적한 전술, 전략은 만주국으로 계승되어, 만주국의 정보선전정책에 기본적인 틀을 제공했다고도 할 수 있으며, 특히 대외 정보선전부문에 취약했던 만주국 정보선전기관의 역할을 대신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관동군이 지배하는 만주국에서 만철이 끝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였고, 바로 국책회사라는 만철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에는 중일전면전, 1941년의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의 침략행위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는 만철의 정보선전공작만으로는 재만 각 민족들을 안으로 통합시킬 수도 없었고, 국제적으로 악화된 대일여론을 호전시키는 것 역시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만철에서는 일찍부터 정보선전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였고, 정세 변화 속에서 정보선전활동을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과 체계를 끊임없이 손질해 나갔던 것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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