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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0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67 - 30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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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본 논문은 1919년 천진총상회를 중심으로 북양정부, 학생연합회, 일본과의 갈등과 소통노력에 대해 검토한 글이다. 사회의 안정과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북양정부는 천진에서 파시가 현실로 나타나자 긴급회의를 개최하여 참의원 曾毓雋을 천진에 파견하여 省長 曹銳와 함께 총상회의 개시를 설득하였다. 曹銳는 총상회를 직접 방문하여 만약 어떠한 종류의 변고가 생기면 지켜줄 수 없다는 경고성 연설을 하고, 국무원 대표는 파시가 외교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위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강한 압박을 가하였다. 결국 천진총상회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파시를 철회하고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애국운동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력이었던 학생연합회회는 거리 시위를 주도하고 총상회의 즉각적인 파시 선포와 일본상품 소각을 요구하였다. 총상회 대표는 시민들의 생계와 지방치안과 관련되는 일이니 토론을 거쳐 방법을 찾고자 하였지만, 학생대표는 중국의 危亡을 근거로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여 파시가 결정되었다. 이후 총상회 내부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파시와 복시를 반복하면서 사태의 책임을 지고 정․부회장이 모두 직책을 사임하는 사태로 전개되었고, 회장은 이후 총상회의 업무를 사실상 방기하였다. 이익을 보존하려는 일본의 압력과 간섭도 점차 노골화되었다. 천진 주재 일본총영사 船津辰一郞은 천진총상회의 선거에 개입하여 卞月庭의 지도를 무력화 하고자 하였다. 일본영사의 무리한 요구에 대하여 각계연합회가 총상회를 앞장서서 보호하려는 태도를 취한 것은 일본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명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보여준 천진총상회의 태도는 정부와 학생연합회의 압력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대응이 수시로 변하였다. 그 원인은 중앙정부와 지역 당국의 압력을 많이 받았고, 일본상품 소각문제는 회원들에게 엄중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상회의 존재 목적이 상인의 이익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일본상품저지 운동에 깊이 개입한다는 것은 총상회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러한 사정이 바로 천진총상회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학생연합회와 보조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부의 압박과 동시에 학생연합회를 비롯한 행동을 요구하는 지역여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회원들의 이익도 보존해야만 했던 총상회는 난국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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