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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경연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교회사연구소 교회사연구 敎會史硏究 第54輯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111 - 144 (34page)
DOI
10.35162/rfkch.2019.06.5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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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와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하였던 윤형중 신부는 가톨릭 교리의 전파를 위해 전 생애를 바쳤다. 그는 《가톨릭靑年》의 창간부터 시작하여 《경향잡지》·《경향신문》 등 가톨릭의 언론 창달과 저술 활동뿐만 아니라 순교자에 대한 현양에 열성을 다했다. 윤형중 신부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윤자호의 후손으로, 그의 집안은 독실한 신자 집안이었다. 그의 오촌 당숙은 한국 가톨릭교회 최초의 장편소설 《은화》의 저자 윤의병 신부이다. 때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성직자의 길을 결심하였다. 윤형중 신부는 사제서품을 받은 후 경성대목구의 출판부 보좌로 전근되어 1933년 《가톨릭靑年》을 창간하였다. 편집위원은 윤형중 신 부를 중심으로 장면, 장발, 정지용 등이었다. 이들과 함께 당시 문학계·예술계를 통틀어 수준 높은 가톨릭 잡지를 출간하였던 것이다. 이후 《경향잡지》의 편집장과 경성대목구 출판부 부장에 임명되었고《경향신문》의 창간까지 그의 언론 활동은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언론 활동과 더불어 윤형중 신부가 주력하였던 것으로 순교자 현양이 있다. 그는 순교자들에 대한 신심이 매우 두터웠다. 그는 순교의 의미에 대한 깊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가톨릭 교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알리고자 하였다. 그에게 있어 순교란 곧 ‘가톨릭 진리의 증명’이었다. 즉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 죽음을 당하는 것은 ‘천주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윤형중 신부는 ‘순교정신’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때 그의 순교정신은 한국사회의 시대상황과 맞물려 적용되는 한계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일제의 전시체제기와 함께 순교정신은 더욱더 강조되었다. 순교자를 현양하는 것은 곧 ‘보국’을 위한 길이 되었던 것이다. 순교정신은 해방을 전후로 하여 가톨릭교회의 반공사상을 확립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우리는 순교정신을 가지고 반공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윤형중 신부는 ‘순교자 현양회’를 통해 그의 순교정신을 실현시켰다. 1939년에 설립되었던 순교자 현양회는 발족하기 직전, 일제 당국에 의해 중단되었다. 이는 해방 후 최초의 한국인 신부였던 김대건 신부의 순교 100주년에 맞추어 다시 발족되었다. 순교자 현양회는 순교자에 대한 현양과 존숭을 목적으로 하며, 이를 통해 가톨릭 신앙을 강화시키고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그 활동 내용 중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일은 박해시기의 유물 수집과 순교지의 확보였다. 윤형중 신부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사 전반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전 생애를 언론 활동에 매진하였고 순교자 현양에 대한 필요성을 제창하였다. 때문에 윤형중 신부는 많은 저서와 글을 남겼고 이를 통해 당시 한국 가톨릭교회의 한 단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생애와 언론 활동
3. 순교정신과 사상적 조류
4. 순교자 현양회의 건립 과정과 내용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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