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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영준 (국방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제정치학회 국제정치논총 국제정치논총 제59집 제1호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7 - 47 (41page)
DOI
10.14731/kjir.2019.03.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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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에 대해 일본을 포함한 서구 학계에서는 비서구 사회에서 예외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기점으로 인식하는 반면, 한국 사회에는 제국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개시된 기원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본 고에서는 메이지 정부의 실력자였던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와 당대의 대표적 계몽사상가였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메이지 초기에 작성했던 글을 통해, 메이지 국가 초기 주요 정치가와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국가적 성격과 과제를 어떻게 규정하려 했던가를 확인하고자 했다.
이와쿠라 도모미는 막부로부터 조정에 정권이 반환된 사실을 역사적 맥락에서 중시하여, 당대 일본의 과제를 황국(皇國)의 재건을 위한 권력의 집중화로 규정한다. 막번체제 하에서 250여개의 번에 권력이 상대적으로 분산되었다면 메이지의 일본은 천황을 정점으로 한 중앙정부에 지방정부가 일원적으로 통합되어야 하고, 조세제도, 재정제도, 군사제도 등이 역시 천황의 권력에 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메이지 정부의 중심적 과제는 강병(强兵)보다는 부국(富國) 우선이 되어야 함도 강조한다.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는 러시아 위협론을 제기하면서,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맺어온 청국과 조선에 대해서는 제휴론 혹은 연대론의 입장을 표명한다. 이같은 인식 하에서 정한론의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한편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의 기준에서 국제질서를 미개, 반개(半開), 문명의 국가들로 구성된 것으로 파악하고, 일본이 반개(半開)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한 일본으로서는 구미 국가들의 성취를 학습하여 문명의 상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된다. 다만 문명화를 성취하기 위해 후쿠자와는 정치지도자 보다는 일반 국민의 지덕 증진과 기풍 변화를 중요 과제로 제기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후쿠자와는 유학이나 국체론 등을 경계하고, 강병건설 우선론도 경계하고 있다. 대외정책과 관련하여 후쿠자와는 구미 열강 전체의 식민지 팽창 현상을 경계하면서, 일본으로서는 청국과 조선에 대한 연대와 제휴에 주력할 것을 주장한다.
이같이 이와쿠라와 후쿠자와의 담론을 통해 볼 때, 메이지 초기 일본의 주요 식자들은 국권론자나 민권론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청국과 조선에 대한 대외정책 면에서는 제휴론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치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존재한다. 당시 일본의 국력이나 위상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하에서 온건한 대외정책을 선택하는 공통점이 생긴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상대적 국력의 증진에 따라 이같은 대외정책은 변화될 개연성이 있었고, 1880년대 중반 이후 이같은 대외정책 변화가 국권론자와 민권론자 간에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것이 아닐까 한다.

목차

Ⅰ. 들어가는 글
Ⅱ. 왕정복고 이후 일본의 국제정치적 위상 인식: 황국(皇國)과 반개(半開)
Ⅲ. 국가건설의 방향: 황국 자강(自强)과 인민 문명화
Ⅳ. 국제질서 인식과 대외정책론
Ⅴ.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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