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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방상근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8권 제1호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59 - 93 (35page)
DOI
10.35161/rkapt.2019.03.1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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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치세는 수성의 시대였다. 세종은 한편으로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태조와 태종이 이루어놓은 법도를 제도화하는데 집중했다. 그는 백성의 입장에 서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자 노력했고, 지방의 수령들에게는 친견(親見)과 교서를 통해서 백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을 수시로 강조했다. 경연과 토론의 자리에서는 신하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서까지 진솔한 자세로 임했다. 인사정책에 있어서는 허물 많은 인재들로 하여금 공적을 세워서 허물을 덮을 기회를 주었고, 불교문제에 있어서는 이단(異端)도 포용할 수 있는 모습을 보였다. 세종은 정직 · 책임감 · 공정성과 같은 행동양식 가치를 실천한 리더였고, 세종시대는 다양한 동기와 가치를 지닌 인재들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루는 시대였다. 세종의 ‘거래적 리더십’이 이를 가능케 하였다.
반면에 성종의 치세는 교화의 시대였다. 성종은 한편으로 세조와 정희왕후에 대한 효(孝)를 내세워 훈구세력과의 정치적 타협과 안정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조대 이후 무너져 내린 풍속을 교화하고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여 교화의 정치를 뒷받침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는 국왕이 솔선수범하여 백성을 감화시키는 교화의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자각하고, 승출의 법을 통해서 인재의 능력만이 아니라 내면의 심술(심성)을 관찰하고 출척(黜斥)을 시행했다. 성종은 군자소인 논쟁을 통해서 인간 내면의 선악과 심술의 은미함을 살피는 ‘심성의 정치’로 나아갔다. 도승법을 둘러싼 논쟁에 있어서도, 정희왕후의 유지와 양대비의 압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승법의 시행을 중단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비록 세조와 정희왕후에 대한 효(孝)에는 어긋나는 일이라 할지라도, 백성의 풍속을 교화하기 위해서 내린 결단이었다. 리더십 승계문제에 있어서도, 세종이 제도적 해결책을 모색한 것과 달리, 성종은 세자에 대한 교육에 집중하였다. 성종은 ‘변혁적 리더십’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조선왕조는 세종과 성종을 거치면서 수성에서 교화의 시대로 진입했다. 그것은 거래적 리더십에서 변혁적 리더십으로의 변화를 의미했으며, 행동양식가치 중심에서 목적가치 중심의 리더십 변화를 의미했다. 조선은 두 임금을 통해서 단순히 백성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고차원의 가치와 원칙을 확립하여 백성이 ‘더 나은 자아로 향상’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고양하는 정치공동체로 전환되어 갔다.

목차

국문요약
Ⅰ. 서론
Ⅱ. 시대와 비전의 차이
Ⅲ. 인사정책
Ⅳ. 언론의 활성화와 공론정치
Ⅴ. 불교에 대한 입장
Ⅵ. 리더십 승계
Ⅶ. 리더십 평가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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