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성현 (동아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62집
발행연도
2018.11
수록면
327 - 364 (38page)
DOI
10.18496/kjhr.2018.11.62.327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부산의 개항과 개항장에 설치될 일본인 거주지를 둘러싸고 조선과 일본은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먼저, 조선과 일본은 개항과 더불어 개항장에 설치된 외국인 거주지를 ‘조계’와 ‘거류지’로 대별하여 사용했다. 일본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류지’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과 달리 조선은 공식적인 명칭으로 줄곧 ‘조계’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조계’를 사용하지 않고 ‘거류지’를 사용한 원산과 마산의 경우, 모두 일본 측의 조약문을 그대로 한역한 것으로 이 또한 조선 측이 사용한 용어가 아니라 일본이 사용한 용어였다.
둘째, ‘조계’와 ‘거류지’의 용어 사용은 단순한 번역의 차이가 아니라 성격의 차이를 내포한 것이었다. 조선이 concession 방식의 ‘조계’ 설정을 주장하고 관철시킨 것은 교섭국 일본의 강제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settlement 방식의 ‘거류지’가 추구한 자유로운 거주와 통상을 반대하고 이를 제한하고 방어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었다.
셋째, 일본은 왜관과의 연속선상에서 ‘거류지’를 설정하고 이를 근대적인 자유로운 거주통상지로 확대하고자 했다. 반면 조선은 구래의 왜관이 지닌 거주와 통상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측면을 적극적으로 이어받아 조계를 설정하고 일본의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조치로 활용했다.
끝으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 ‘부산구조계’의 설치는 조선 측의 ‘定界의 防限’으로써 규정되었고 이후 ‘조계’라는 명칭의 고수와 일본인 거주지의 독점 및 확장에 대응하는 경찰소와 감리서 설치, 그리고 조계의 잡거지로의 전환을 통한 각국조계화 등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조계의 정리 및 조계 밖으로의 토지침탈과 법제화(조계 밖 10리의 토지영차), 러일전쟁과 이에 따른 조선의 半식민지화, 그리고 1906년 개항장의 행정 일원화에 의한 부산이사청을 설치함에 따라 막을 내렸다. 이때부터 조계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전관거류지’가 공식화되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일본인 거주지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입장 차이
3. ‘부산구조계’의 설정과 ‘부산일본전관거류지’로의 전환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9-349-000210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