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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동철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08집
발행연도
2018.9
수록면
177 - 218 (42page)
DOI
10.52271/PKHS.2018.09.108.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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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상업은 서울의 시전과 지방의 장시[5일장]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장시는 18세기 후반에는 일상적인 교역기구로 자리잡았다. 서울의 시전은 육의전과 일반시전으로 나뉜다. 육의전은 상위 6개의 시전을 합쳐서 부르는 명칭이다. 시전 수가 7개, 8개로 바뀌면서, 칠의전, 팔의전으로도 불렀다. 육의전은 영업 독점을 침해하는 상행위를 금지하는 금난전권을 가지고 있었다. 금난전권의 적용 범위는 도성에서 10리 범위 이내였다
서울의 상업 · 도시의 발달에 따라 인접한 교통 요지를 중심으로 ‘교환의 場’ 이 발달하였다. 경기도 양주의 樓院店은 그 대표적인 곳이다. 함경도 지역의 魚物과 布物이 서울로 들어오는 요지에 위치하였다. 누원점은 旅店 기능을 하였지만, 이곳에는 장시가 없었다. 이곳 상인들은 장시를 개설하여 영업의 거점으로 삼으려고 했다. 18세기 후반 이후 여러 차례 장시 개설을 시도하였으나 시전[육의전]상인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누원점은 鄕商과 시전상인이 충돌하는 공간이었다.
1994년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칠의전문서[訴狀] 1장이 공개되었다. 1829년 양주 지역민이 누원점에 장시를 개설하려고 하자, 칠의전상인이 양주에 가서 반대하는 청원서를 관에 올린 것이다. 칠의전이 직접 작성한 문서이고, 조직의 상급 직책과 상인 이름이 적혀 있는 일급 사료이다. 이 문서는 40여 글자가 훼손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필자는 최근 훼손된 글자는 물론이고 내용도 보완해 줄 수 있는 다른 자료를 입수하였다.
두 자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없다. 이 논문은 두 자료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다. 두 자료의 검토를 통해 다른 상업문서 연구도 보완할 수 있다. 조각난 1829년 칠의전 사료의 퍼즐을 맞추기 위한 시도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七矣廛訴狀의 복원과 내용
Ⅲ. 樓院店場 개설을 둘러싼 鄕商과 京市廛의 대립
Ⅳ. 1829년 七矣廛都所의 구성과 특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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