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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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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동북아학회 한국동북아논총 한국동북아논총 제71호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245 - 264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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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光州)의 민주성(民主性)을 대표하는 역사적 사건으로는 1919년의 광주학생운동과 1980년의 광주학생운동과 1980년의 5·18민주항쟁이 지목되고 있는 반면 1960년의 광주3·15의거나 그 연장선상에서의 4·19혁명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민주항쟁의 기억과 그늘이 워낙 넓은 까닭일 수도 있지만, 3·15의거의 대표성은 마산에 의해 행사되고 있고 4·19혁명은 서울로 대표되고 있는 현실적 한계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유당독재정권의 영구집권 음모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마산에서 촉발된 것은 아니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한다면, 대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미 2월에 발발한 대구 2·28의거와 투표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부정선거의 총지휘소인 전남경찰국 면전에서 진행된 광주 3·15의거는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고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 논문은 1960년 3월 15일 광주 금남로에서 발발한 ‘3·15장송데모’의 경과와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고 그에 바탕하여 거기에 담긴 통일정신을 고찰함으로써 대구2·28, 광주3·15, 마산4·19, 서울 고대생시위 등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역사적 사건들의 연계성을 찾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도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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