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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철학회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움직임의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제12권 제2호
발행연도
2004.12
수록면
385 - 400 (1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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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남 김해에서 출생한 김택수는 한국, 아시아복싱연맹회장과 세게 아마추어 복싱연맹 집행위원, 계24대 대한체육회장, KOC위원장, IOC위원을 역임하면서 격동의 계3공화국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스포츠에 접목시키고 스포츠 내셔널리즘의 엘리트 체육을 통해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는 선봉장이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북한에 참패한 이후 그는 한국체육의 수장으로서 남북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적 상황에서 북한을 압도하기 위한 한국체육재건에 앞장섰다. 태릉선수촌의 확장과 현대화, 선수연금제도 도입 및 확충, 해외전지훈련의 확대 등 대표선수들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보장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1976년 제24회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광복 후 젓 금메달의 쾌거를 이룩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금메달 하나를 따낸 것이 아니라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북한을 앞서가는 한국 체육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대한체육회장 취임 이후 공산권 및 비동맹국가와의 스포츠 교류를 과감히 실천하여 그들에게 한국의 참된 이미지를 심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외교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계3공화국의 몰락과 신군부세력의 등장으로 그의 스포츠 정책 제안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생기고 결국 1981년 9월 30일 바덴바덴에서 나고야를 제치고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될 때 그의 소극적인 태도와 입장 표명으로 인해 1983년 사망할 때까지 그의 활동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계3공화국 당시 그가 입안하고 실천하였던 스포츠 정책과 외교활동이 오늘날 한국 스포츠도약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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