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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현모 (여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7권 제1호
발행연도
2018.3
수록면
67 - 96 (30page)
DOI
10.35161/rkapt.2018.03.17.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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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는 이예(李藝)와 더불어 15세기 조선 외교의 대표 인물이다. 이예는 15세기 전반부를, 신숙주는 후반부의 대일(對日)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신숙주는 16차례 가량 일본과 명나라와 여진족 거주 지역을 오가며 외교와 전쟁의 임무를 수행했는데, 그의 이런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조선은 만주 일대의 질서유지 국가로서 위상을 정립했다. 그뿐 아니라 조선은 일본과는 교린관계, 즉 대마도주에게 재량권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조 · 일 통교체제를 정비해 동북아 평화질서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신숙주가 펼친 외교활동을 그가 말하는 ‘내수(內修)외교’의 관점에서 재조명하였다.
그가 일본과 여진 부족을 상대로 기울인 외교노력의 결과, 세종의 ‘신뢰기반 교린 원칙’, 즉 동북아의 질서 유지에 협조하는 세력에게는 은혜를 베풀되, 도발 세력에 대해서는 무력으로 확실히 제압하는 은위(恩威) 병행외교 방침이 세조시대에 들어 복원되었다. 그가 주로 활동한 세조시대에 일본과 여진, 그리고 유구 지역의 사람들까지도 빈번히 조공외교를 원하는 이른바 ‘조선견사(朝鮮遣使) 붐’이 일어난 것은 그러한 외교 노력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I. 조선 초기 대표적인 인물 신숙주
II. 신숙주의 ‘삶의 계기’와 외교생각
III. 신숙주의 일본 외교와 여진족 외교
IV.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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