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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숙화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고조선단군학회 고조선단군학 고조선단군학 제37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149 - 183 (35page)
DOI
10.18706/jgds.2017.12.37.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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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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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30년대 만주에서 대종교 재건과 민족운동에 대한 글이다. 1930년대 만주 대종교총본사의 재건은 국내 남도본사의 폐쇄에 따른 단군신앙의 부흥과 1930년대 초반까지 만주에서 활동했던 민족운동세력의 재결집이라는 시대적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만주국 아래 대종교 활동은 일본총영사관의 포교승인을 받고 시작되었다. 때문에 이 시기 대종교 민족운동은 항일정신이 약화되었거나 종교활동 중심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민족운동은 1926년 ‘대종교 해산령’ 이후 오랜 활동 공백으로 약화된 교단을 정상화시킨 다음 그 토대위에 본격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양상을 보인 특수성을 살펴보아야 했다.
재만 대종교는 일제의 황민화정책이 한창이던 1937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북만주 전 지역에 52개의 시교당이 설립되었고 교인 수 16,764명에 달했다. 이러한 발전은 1920년대 북만주 항일투쟁에 참가했었던 민족운동세력의 적극적인 활동과 재만동포들의 민족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가능했다.
황민화정책에 대응했던 대종교의 1930년대 민족운동은 다음과 같다. 안희제가 東京城에 건설한 발해농장을 독립운동기지건설로 삼고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발해학교 및 대성학원을 건립하여 한글 및 역사교육으로 민족정신을 함양하였다. 단군 천진전 건립을 준비하여 일본신도에 저항했고 1940년에는 1만 5천권이 넘는 교적을 간행하여 한글과 역사서를 보급하였다. 개천절・어천절・중광절 등과 같은 정기적인 의례는 황민화정책에 대응하여 민족문화를 보전하고 저항하는 운동이었다.
대종교 민족운동은 일제의 전시동원통제가 심화되던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어 일제의 탄압을 받는 요인이 되었다. 1930년대 민족운동은 1942년 임오교변 사건으로 대탄압을 받으면 종식되었다. 이는 만주국에서 대종교인들이 일제의 황민화정책에 포섭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만주국에서 대종교 재건의 배경
Ⅲ. 1930년대 대종교 민족운동의 전개양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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