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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지호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58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102 - 137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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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청대 검동남 지역의 행정 개편과 묘족 사회의 변화 실태를 개토귀류 운용 실태를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검동남 지역의 경우에는 토사의 권한이 매우 미약하고 게다가 토사가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생묘(生苗)가 상당수 분포하고 있었다. 실제로 개토귀류를 추진한 주요 인물 중의 하나인 악이태(鄂爾泰)가 토사의 권력이 강한 운남과 달리 토사의 권한이 미약한 귀주의 묘족을 더욱 위험시했던 것은 바로 개토귀류가 단지 토사의 폐단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결국 이 생묘는 토사의 지배하에 있던 숙묘(熟苗)와 달리 개토귀류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면서 강렬하게 저항의 길로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청조는 개토귀류를 통해 토사를 폐지하고 유관(流官)으로 대치하는 행정개편을 단행했지만, 검동남 지역의 경우 묘족 사회의 저항에 부딪혀 여전히 직접통치하는 데 곤란함을 느끼고 현 아래 토관(土官)·토목(土目)·통사(通事)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게다가 종래 토사가 없던 생묘 지역에는 새롭게 토사제도를 설치하는 등의 변화를 도모한다. ‘중외일체(中外一體)’의 관념에서 시작된 개토귀류는 오히려 ‘중외격리(中外隔離)’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청조는 묘족 사회의 민족적 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한/비한의 세계를 분리하여 묘족 지역에 한족의 이주 등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묘족 사회의 한화 정책 역시 동시에 추진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한편, 한족 이주민이 서서히 증가함에 따라 묘족 사회는 크게 변화하게 된다. 검동남 지역의 경우 둔전의 확대로 농지 면적이 크게 증가했으며, 면화 등 상품작물의 재배도 증가하게 된다. 특히 청수강(淸水江) 하류지역의 경우 목재자원이 풍부하고 목재의 재질도 뛰어나 임업경영이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하게 된다. 현재 청수강 유역의 임업경영의 실태를 보여주는 방대한 분량의 계약문서는 당시의 임업경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임업경영을 통해 가령 문두채(文斗寨)의 강씨(姜氏) 일족과 같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집단도 등장하지만, 대부분의 묘족은 한족 이주민 또는 상인 등의 수탈을 통해 전토와 산림을 상실하는 경우가 속출하게 된다. 이들은 전호가 되어 임업경영에 종사하거나 목재를 운반하는 등의 힘겨운 노동에 종사하여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는 개토귀류 이후 묘족 사회의 변화가 일률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다. 생산수단을 상실한 묘족 사회의 불만은 결국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불안정성을 내재하고 있었는데, 이는 결국 청조의 체제가 내부로부터 균열을 가져오는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검동남 지역의 개토귀류 과정
Ⅲ. 개토귀류 후 검동남 묘족 사회의 변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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