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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崔珉熙 (진흥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0호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123 - 15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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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고분군은 신라 마립간 시기 경주선상지에 조영되던 왕릉이 지증마립간[지증왕]을 끝으로 법흥왕부터 왕경 외곽 구릉지로 옮겨 조성된 처음 왕릉들이다. 신라중고기를 대표하는 왕릉군인 이곳이 조선말 김정희에 의해 왕릉으로 비정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여러 학자들이 나름 근거를 제시하면서 왕릉 주인을 비정하였다. 그러나 기록에 충실한 듯하면서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기록을 구체적으로 해석 이용하고, 현장의 유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새롭게 왕릉 주인을 비정하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신라왕릉 가운데 가장 확실한 태종무열왕릉에서 출발하여, 애공사와 영경사의 위치를 추정하는데서 시작되었다. 애공사와 영경사는 여러 학자들의 연구된 자료를 현장에 적용하여 확인하였다. 애공사와 영경사를 기준으로 역사서에 기록된 왕릉의 위치를 이용하여 비정하였다. 결과적으로 1호분은 법흥왕릉, 2호분은 진흥왕릉, 4호분은 진지왕릉이 확실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3호분은 솔직하고 정확하게 말하면 주인을 모른다고 해야 한다. 다만 추정해 본다면 진흥왕비 사도부인일 가능성이 가장 많다. 왕비로서 장례에 관해 기록이 남겨진 유일한 존재이고, 진흥왕릉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경주 서악동고분군의 왕릉 명칭에 대한 기존 견해 검토
Ⅲ. 경주 서악동고분군에 대한 새로운 왕릉 명칭 비정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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