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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한민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8호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153 - 195 (43page)
DOI
10.21490/jskh.2017.08.6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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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길준의 「平和光復策」초고본을 검토한 것이다. 「平和光復策」은 1907년 8월 일본에서 귀국한 유길준이 작성한 문서로, 사직 상소와 함께 순종에게 이 해 10월 제출한 문서였다. 이 문서는 귀국 직전 유길준이 일본에서 전개했던 여러 활동과 연결시켜서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일본 신문기사와 잡지 등에서 확인되는 유길준의 활동 기사를 검토하였다. 귀국을 앞두고 유길준은 도쿄에서 여러 인물들과 접촉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일본어가 능숙했던 그로서는 각계각층의 인사와 만나 의견을 들으면서 정세 판단을 하고, 다른 망명자들과 달리 언론과 접촉 빈도를 높임으로써 본인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平和光復策」초고본은 국한문혼용체로 작성되었다. 제출본과 비교해 보았을 때 차이가 나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 최익현, 이범진, 박영효를 거론한 내용은 초고본에서만 확인된다. 유길준은 ‘평화광복’의 국시를 국왕 곁에서 보좌할 만한 능력을 지닌 자로는 박영효가 적격이라고 추천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완성본을 사직상소와 함께 제출하는 과정에서 대폭 삭제하거나,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통감부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자기검열을 실시하여 필자 자신의 위험성을 낮추는 전략을 택했음을 알 수 있다. 초고본에서 제출본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나타난 내용상의 차이는 유길준이 국내 정치에 대해 체감하면서 판단을 바꾸게 된 과정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다. 1907년 당시 『皇城新聞』은 일본과의 친선 유지를 전제로 하는 선상에서 한국의 실력 발전을 통해 국권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유길준의 「平和光復策」도 결국 평화에 기초하여 부강을 도모해야 한다는 실력양성의 입장에 서 있었던 만큼 『皇城新聞』의 논조와도 친연성이 높았다. 장문의 「平和光復策」을 굳이 두 차례에 걸쳐 전문을 게재한 것도 결국 같은 입장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이 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귀국 이전 유길준의 일본 내 활동과 언론보도
3. 「平和光復策」초고본의 검토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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