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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계승범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47輯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165 - 19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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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의병의 倡義명분은 鄕保와 勤王두 가지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 중에서도 영남의병은 향보에, 호남의병은 근왕에 방점을 찍어 이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창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잘 정리한 격문이나 통문 또는 초유문의 내용을 살피면, 그런 통설은 일부 조정이 필요하다. 영남 의병도 거병의 제일 명분을 군신의리에 기초한 근왕으로 천명했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의 불리한 전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향촌 인근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지, 영남의병이라고 해서 창의거병의 명분 자체가 鄕保에 치우친 증거자료는 사실상 없다.
또한 근왕의 대상인 국왕 입장의 창의 독려 명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의병장과 鄕民의 입장에서만 창의 명분을 고찰했을 뿐, 전쟁 초기에 의병을 가장 절실하게 독려한 핵심 인물 국왕의 입장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왕 선조는 勤王忠義외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명분을 하나 더 강조했는데, 그것은 바로 명나라 천자를 중심으로 구축된 중화질서의 수호라는 명분이었다. 향촌의 선비들이 대체로 국내 차원에서만 군신의리를 강조한 데 비해, 국제무대에서 천자와의 관계를 극히 중시하던 조선 국왕이 생각한 군신의리는 명나라 천자와 자신[제후]이 맺은 군신관계를 의미하였다. “종사가 망하고 신민을 잃을지언정” 군신[천자-제후]간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는 국왕 선조의 천명이야말로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바로 자신이 다스리는 조선이 중화의 藩屛이자, 자신 스스로 藩王곧 제후임을 현실 그대로 인지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시 동아시아 국제무대에서 조선왕조가 갖고 있던 정체성의 일면이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의병 주체의 창의 명분
3. 국왕의 의병 독려 명분
4. 맺음말: 조선왕조의 정체성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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