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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영욱 (역사문제연구소)
저널정보
도시사학회 도시연구 도시연구 : 역사·사회·문화 제16호
발행연도
2016.10
수록면
105 - 134 (30page)
DOI
10.22345 /kjuh.2016.10.16.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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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무악동 45, 6번지를 가리키는 ‘옥바라지 골목’은 과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자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옥바라지를 위해 잠시 기거했던 곳이었다. 이렇게 독특한 역사성을 지녔던 ‘옥바라지 골목’은 2016년에 철거되었다. 그런데 이 공간을 중심으로 철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현재성이 생겼다. 다시 말해 ‘옥바라지 골목’에는 국가, 사회, 도시, 감옥 등과 관련된 역사성과 현재성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 글은 이러한 역사성과 현재성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생각하기 위해 식민지 시기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 행위를 살펴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감옥 행정은 ‘항일’을 ‘범죄’로 취급하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감옥은 통치에 저항하는 세력과 일반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였다. 서대문형무소의 기능 역시 이런 것이었다. 감옥은 수감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하면서 사회와 격리시키고자 하였으며, 이는 수감자들과 일반 민들을 통치에 순응케 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식민지 全기간 동안 성공한 적이 없었다. 옥바라지가 수감자들과 사회를 끊임없이 연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옥바라지는 감옥의 통치가 늘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게 하는 동력이었고, 이런 점에서 “감옥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었다.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서대문형무소가 ‘미결수’와 ‘기결수’를 동시에 수감하던 감옥이었다는 점은 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에 큰 변수가 되었다. 형무소 주변에는 날마다 수감자들을 옥바라지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수감자들은 이들의 옥바라지를 통해 감옥의 통제에 맞설 수 있었다. 수감자들이 증가할수록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는 일상적인 행위가 되어 갔으며, 이를 계기로 주변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이것이 ‘옥바라지 골목’이다. 옥바라지는 “감옥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역사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지니는 행위이며, “철거된” ‘옥바라지 골목’은 그 행위자들이 모였던 사회적 공간이었다.

목차

Ⅰ. 2016년의 ‘옥바라지 골목’
Ⅱ. 통치와 감옥
Ⅲ. 저항과 옥바라지
Ⅳ. ‘옥바라지’와 새로운 주체의 형성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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