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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소설학회 현대소설연구 현대소설연구 제37호
발행연도
2008.4
수록면
125 - 14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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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는 신소설의 창작과 간행이 일반화되면서 재래의 소설과 구별되는 새로운 소설양식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문학사적 ``변화``의 측면이 존재하면서도, 활자본 고소설 또한 대중들에게 널리 수용되었던 ``지속``의 측면이 엄연히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인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 소설사의 양상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하기 위해서는 이 ``변화``와 ``지속``의 두 측면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910년대의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착종성으로 인해 이 시기의 작품들에 대해 논의할 때에는 매우 신중히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금낭이산>은 그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이다. 흔히 조선 후기에 창작된 고소설로 알려진 <보심록>과 <명사십리>의 이본으로 알려진 <금낭이산>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간행된 작품이며 그 간행 연도는 1912년이다. 그러므로 세 작품의 간행 순서 역시 기존의 논의에서 언급되었던 ①<보심록>→②<명사십리>→③<금낭이산> 또는 ①<명사십리>→②<보심록>→③<금낭이산>이 아니라, ①<금낭이산>→②<보심록>→③<명사십리>로 수정되어야 한다. 또한 <금낭이산>의 창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조씨고아>는 조사 결과 조선 후기에 수용되었을 가능성이 희박하며 20세기 이후에 한국에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판단은 조선 시대에 <조씨고아>의 직접 수용이 이루어졌음을 입증하는 문헌적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과, <조씨고아>가 20세기 이후에야 한국에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여러 정황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금낭이산>의 창작 연대는 조선 후기로 올려 잡을 수 없다. 따라서 활자본의 간행 연대인 1912년을 이 작품의 실제 창작 연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금낭이산>이 <보심록>과 <명사십리>로 개작되어 가는 과정을 판본 간의 비교를 통해 살펴본 결과, 신소설적 특징을 상당 부분 내포하고 있었던 이 작품이 점차 후대로 가면서 고소설적인 회귀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고소설의 제재에 신소설의 기법을 결합시킴으로써 소설 장르의 외연을 확대시킨 하나의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라고 볼 수도 있고, 신소설의 등장에 따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 고소설이 생존을 위해 시도한 내적 변화의 결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신소설적 특징을 상당 부분 내포하고 있는 <금낭이산>이 고소설적 형식과 기법을 답습하고 있는 <보심록>과 <명사십리>에 선행하는 원본이라는 사실은 신소설과 고소설 사이의 교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우선 <금낭이산>의 사례는 신소설이 기존의 고소설을 대체하며 이 시기를 대표하는 새로운 문학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기존의 인식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신소설과 고소설의 양식적 차이점을 근거로 해당 작품이 어떤 장르에 귀속되는지의 여부를 밝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사실들의 존재를 밝혀내고 그것이 나타나게 된 원인과 배경을 규명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 시기에 간행되었던 이른바 신소설과 활자본 고소설 전체에 대한 면밀한 고찰 및 개별 작품에 대한 검토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금낭이산>이 지녔던 실험성과 혼종성이 새로운 양식의 창출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고 결국 고소설적 양식으로의 회귀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요청된다.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활자본 고소설은 1910년대 후반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다가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근대 소설의 등장과 함께 문학사적 소임을 다하고 퇴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는 물론이고 해방 후 1960년대까지도 1910년대의 활자본 고소설 작품들이 딱지본의 형태로 경향 각지의 출판사에서 영인 혹은 재편집되어 간행되었던 현실을 고려할 때, 앞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하겠다. 따라서 근대문학의 초창기로부터 해방 후에 이르는 반세기 남짓한 기간에 신소설과 구소설, 그리고 근대소설 작품들이 상호 어떤 관계 속에서 출판 시장과 독서 대중들에게 수용되었고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금낭이산>은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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