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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미숙 (목원대학교)
저널정보
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미술사와 문화유산 미술사와 문화유산 제4집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133 - 169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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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소회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 창립한 국내 최초의 채색화 그룹이다. 또한 2015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최장수 회화 그룹이기도 하다. 본 논문은 후소회의 결성과 일제 강점기의 활동에 관해‘후소회전시회(이하 후소회전)’와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조선미전)’에 출품한 작품을 중심으로 고찰한 글이다.
후소회의 스승이었던 김은호는 그림이 회화보다는 서화로 인식되던 1912년, 초상화가로 등단했다. 그는 전통 채색기법에 서양화의 사실적 사생과 명암, 그리고 화려하고 세밀한 일본화를 수용하여 한국 채색화의 근대화를 연 화가였다. ‘서화협회’ 활동과 ‘조선미전’, ‘일본제국미술전람회’ 입상 등으로 화단에서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그의 화실이었던 낙청헌에 청년 화가 지망생들이 모여들었다. 1936년 마침내 그의 문하생들은 후소회라는 동문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창립 회원은 백윤문, 김기창, 장우성, 한유동, 조중현, 장운봉, 이유태 등이다. 후소회원들은 후소회전과 조선미전 등에 작품을 발표하며 채색화단의 신진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동문전인 후소회전은 해방 전까지 6회, 해방 이후에는 2015년까지 총 44회의 전시를 열었고, 조선미전에는 후소회 창립 이전부터 해방 이전인 1944년까지 참여하였다.
후소회전은 회원들이 실험적인 작품을 출품했던 전시였다. 조선미전에 비해 자율성이 보장됐던 동인전에 채색화의 다양한 시도를 감행하여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이것은 해방 후 수묵이나 추상화로 전향했던 회원들의 다양한 작품 성향에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내 유일의 관전이었던 조선미전 참여는 후소회원들이 평가를 받기위한 무대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인 화가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조선미전에서 후소회원들의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비록 현실의식과 회화기법의 미숙함으로 일본화의 소재 및 내용이나 양식상의 친연성이 보이는 경향도 있으나 1940년대 들어오면서 단일시점에 의한 투시원근법을 적용하여 사실묘사에 주력하였고, 맑은 색채의 사용으로 일본적인 색채와 거리를 두며 개별성을 주었다. 특히 김기창, 장우성, 이유태 등은 모두 여성인물화로 조선미전에서 두각을 나타낸 회원들로 같은 명제에 미묘한 차이점을 보이며 변화하였다. 그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인물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동작을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묘사를 하는 등의 새로운 인물화를 창출하려 모색했던 것이다.
창립이후 후소회는 동양화에서 우위에 있었던 수묵화단과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며 채색화단을 이끌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후소회의 전람회 활동으로 일부 평론가들이 채색화의 확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낼 정도로, 일본화가들이 기득권을 가졌던 채색화 부분에 국내인들의 범주가 넓어진 것은 의미있는 성과로 볼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후소회의 결성 배경
Ⅲ. 후소회의 전람회 활동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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