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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주현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88號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215 - 24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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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가, 서예가로 알려진 黃易(1744-1802)는 활발한 訪碑활동을 통해 武梁祠石室, 三公山碑, 熹平石經殘片 등을 발굴한 저명한 금석학자이기도 하였다. 황이는 자신의 방비활동의 여정을 일기를 통해 문자로 기록하였고, 訪碑圖 제작을 통해 회화작품으로 재현하였다.
산동지방을 중심으로 관직생활을 했던 황이는 1797년 정월과 2월 총 29일간 태산을 중심으로 제녕, 제남, 태안 지방을 답사하고 그 여정을 「岱巖訪古日記」로 기록하고 24폭의 《岱麓訪碑圖冊》으로 시각화하였다. 방비여정 가운데 山東學政을 지내던 孫星衍이 중간에 합류하기도 하였으며, 화책이 완성된 후에는 이를 북경으로 보내 翁方綱, 趙懷玉 등의 발문을 받음으로써 《岱麓訪碑圖冊》을 황이 개인의 방비의 기록이자, 당대 저명 금석학자들간의 교류의 기록이 되었다. 황이의 금석학에의 몰두는 회화에 있어서 ‘금석 기운이 농후한 필법’으로 표출되었는데, 이는 《岱麓訪碑圖冊》의 〈첨산〉에 보이는 갈필의 비백을 사용한 서예적 필법으로 드러난다. 또한 황이가 즐겨 사용한 구도는 〈대정〉이 예시해 주는 바와 같이 지방지 삽도나 목판화에서 사용되던 정형화되고 도해적인 화면구성과는 구별되는, 사적인 경험과 시각이 묻어나는 구도였다.
《岱麓訪碑圖冊》의 가장 큰 특징은 황이가 매 폭마다 남긴 발문의 효용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황이는 5개월 여 동안 수습한 탁본을 고증하고 해독한 후, 장소를 찾기까지의 여정, 유물의 위치와 상태, 명문의 고증과 해독, 유물의 사후 처리에 이르기까지 방비활동 전모를 「岱巖訪古日記」보다 상세하게 화책의 발문을 통해 기록하였다. 이 같은 발문의 역할을 〈石經峪〉, 〈龍洞〉등에서 볼 수 있다.
이 같은 황이의 발문은 산수화 발문으로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예로, 일종의 사료이자 금석학적 기록물이며, 동시에 그림으로는 시각화할 수 없는 방비활동의 시간적 추이와 공간적 이동을 문자로서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이 금석학적 발문과 이미지가 결합된 황이의 방비도를 중국의 미술사학자 單國强(1942-)은 ‘실경산수의 신양식’이라 칭한 바 있다. 《岱麓訪碑圖冊》은 ‘倪黃’의 화풍을 토대로한 정통주의 화풍에 ‘사실’을 추구하였던 금석학자로서의 황이의 관점이 결합되어, 현장감이 살아 있으면서도 시적 정취를 잃지 않은 문인실경산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목차

Ⅰ. 서론
Ⅱ. 黃易의 방비활동과 방비도 제작
Ⅲ. 《岱麓訪碑圖冊》의 제작과 의미
Ⅳ.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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