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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봉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57호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267 - 298 (32page)
DOI
10.15299/jk.2015.11.57.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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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 강점기 도량형의 운용 양상에 대해 검토하였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식민지 조선은 1909년부터 도량형법 하에 尺貫法을 시행하였는데, 이를 확산․보급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추진하였다. 척관계 도량형기의 확산․보급을 위해 지역의 군수ㆍ면장 등의 지방 관료를 동원하여 장려하였고, 구 도량형기를 적극적으로 파기하였다. 신 도량형기를 구입할 수 없는 민에게는 마을의 里長과 洞費에서 이를 구입하여 제공하고, 이를 사용하게 하였다. 총독부는 경찰과 헌병 등의 치안조직을 활용하여 부정 도량형기에 대한 단속을 하였는데, 부정 도량형기는 일본인 상인들도 상당수 사용하였다.
둘째, 일제 강점기는 도량형법에 의해 도량형이 운용되었으므로 주로 척관계 도량형기가 사용되었지만, 한말 이후 야드․파운드계의 도량형기도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야드․파운드법은 바다․해상의 거리와 포목류의 길이 측정에 널리 사용되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는 미터법, 척관법, 야드․파운드법 등이 혼재되었고, 그 중심은 척관법이었다.
셋째, 총독부는 朝鮮度量衡令을 공포하여 1926년 4월 1일부터 미터법을 시행하였다. 총독부가 식민지 조선에 미터법을 실시한 것은 일본과 단위의 통일을 위한 것이었고, 이는 식민지 지배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었다. 총독부는 미터법의 확산을 위해 1927년도부터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그것은 미터법의 선전을 위한 포스타와 삐라 등의 각종 선전물을 배포하거나 각 지역에서 설명회를 개최하는 방식이었다.
넷째, 조선의 미터법은 일본에서 미터법이 전면적 실시되지 못하고 유예된 것처럼 유예되었지만, 향후 미터법이 향후 정착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미터법은 해방이후 1964년 1월 1일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되었지만, 일정기간 동안 기존에 사용되었던 척관법과 야드․파운드법 등이 공존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度量衡의 운영 양상
3. 朝鮮度量衡令의 실시와 미터법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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