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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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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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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68집
발행연도
2014.7
수록면
267 - 29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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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辛旽)은 전통적으로 요승(妖僧)으로 일컬어졌지만 실제로 그의 승려로서의 행적이나 환속 이후의 불교와 관련한 활동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관음신앙 및 문수신앙을 중시하였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그의 관음신앙과 문수신앙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배경을 갖는지, 또한 당시 고려 사상계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였다. 이 글에서는 공민왕대 불교계에 대한 최근의 연구와 그동안 활용되지 않는 자료들을 토대로 신돈의 불교 신앙과 불교 정책을 새롭게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개경 근처에 있는 낙산사를 원찰로 삼고 그곳에 상주하는 관음보살에게 우왕의 안녕을 기원하는 등 낙산에 상주(常住)하는 관음보살의 친견을 중시하는 관음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의상의 사상을 계승하는 고려후기 화엄종의 대표적 신앙 모습으로서, 이러한 신돈의 관음신앙 모습은 그가 환속하기 이전에 화엄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돈은 또한 문수회를 중시하여 그의 집권기간 중 매년 대규모의 문수보살을 공양하는 법회를 개최하였다. 이 문수회는 순수한 불교적 의례가 아니라 고려의 최고 신격(神格)으로서 국가의 어려움을 구원하는 호국백두악태백선인(護國白頭嶽太白仙人)의 실덕(實德)(본체)으로서의 문수보살을 공양하는 것으로서, 토착신앙 및 도참과 결합된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신앙 의례였다. 이는 일견 순수하지 못한 불교 신앙으로 보이지만 고려가 건국 이래 토착신앙 및 풍수도참사상과 불교의 공존 및 융합을 추구하였던 것을 고려할 때 고려의 전통적 불교의 모습을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돈은 또한 기존의 권문 및 세족과 밀접하게 연결된 불교계를 새로운 세력으로 교체하려한 공민왕의 불교정책을 계승하면서도 기존 불교계의 입장을 고려하는 절충적인 불교 정책을 추진하였다. 공민왕이 고려 불교계에 기반이 없는 원나라 유학파 선사들을 중용한 것과 달리 신돈은 국내 불교계의 주요 종파 출신 중에서 권문 및 세족과 연결되지 않은 인물들을 중용하였다. 동시에 그는 그들로 하여금 원나라 간화선사의 인가(印可)를 받게 하여 기존과 다른 새로운 간화선 사상으로 불교계를 변화시키려한 공민왕의 의도도 따르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신돈의 불교 정책은 그가 공민왕의 신임을 잃고 실각하면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공민왕은 신돈을 숙청한 이후 신돈에 의해 등용된 승려들을 배제하고 다시 원나라 유학파 간화선사들을 중용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불교계를 주도해가게 하였다. 이러한 불교 정책은 공민왕의 사후에도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기존의 불교 교단들이 크게 위축되는 대신 태고보우와 나옹혜근 등을 비조로 하는 새로운 간화선의 흐름이 불교계의 주류적 흐름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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