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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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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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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59집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7 - 3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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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이후, 중국 남종선계는 석두희천(700~790)과 마조도일(709~788)을 선두로 그들 문하에 의해 대 전환을 맞고, 마조의 선사상이 당대선종의 주류를 이루고 석두계선이 나중에 점차 확대 되어 갔다. 이후 唐五代(907~960)에서 송대까지는 선자들의 大機用(뛰어난 작용)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이 시대를 ``禪機의 시대`` 또는 ``純禪의 시대``라고 한다. 마조의 선은, 평상심이 도이며 현실의 작용이 그대로 본래성이라고 보고 깨달음과 수행을 부정했다. 또한 參問한 근기가 다양한 선자들을 위해 다양한 방편으로 선자를 깨달음으로 이끌고, 따라서 마조교단은 크게 확대되었다. 마조선사상에 회의와 비평이 있는 문하는 마조의 권유로든 아니든 석두계로 옮겨 간다. 그중 五洩靈默(747~818)은, 현실의 작용 그대로의 자기가 아니고 본래성(內)과 현실의 작용(外)의 경계선상에서 그 쌍방에 걸치면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기를 깨쳤다. 이것이 바로 석두의 선이다. 석두는 南嶽山中에서 거의 일생을 보내며 대오를 지향했다. 그는 ``현실의 작용이 본래성``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언어나 揚眉動目(눈섭을 치켜 올리고 눈을 껌벅이는)이라는 현실의 작용과 等値하지 않지만 현실의 작용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 본성, 즉 바로 ``단지 이런 놈(只這箇漢, 본래성)을 깨우치는 것이다. 이러한 석두의 선은 藥山, 雲巖, 洞山 등으로 계승되었다. 당대선에서의 문답은 사상적인 내용을 가진 유의미한 문답, 수행생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회성의 문답이었던 것에 비해, 송대는 先人의 문답을 수집, 선택하여 이를 과제로 참구하는 것이 수행중심이 된다. 공안선의 한 방법인 문자선의 정점은 圓悟克勤(1064~1136)이다. 원오는 깨달음도 닦음도 소용없다는 平常無事를 전면 부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大悟가 철저한 다음 비로소 긍정된다는 것이다. 원오는, 공안은 활구로 참해야 하며 곧바로 直透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오의 선에 同乘하면서 새로운 기법의 선을 제시한 것이 대혜의 간화선이다. 공안의 참구가 어떻게 해서 대오라고 하는 목적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 대혜는 화두를 들되 반드시 대의심으로써 참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안→의단→대오라는 型을 개발하고 선을 처음으로 제도화 규격화한 것이다. 이 점에서 대혜의 선은 원오의 所說을 토대로 하여 형성된 것이며 당·송대의 선사상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본다. 당·송대 선종계의 흐름은 ``작용이 바로 본래성``과 ``참된 주인공을 발견``한다는 두 양상이었다. 그러나 결국 南宋代 이후는 대체로 후자의 경향이 강했다. 대혜의 역동적인 간화선은, 북송대의 선이 당대 주류의 선을 강력히 부정하면서 철두철미의 開悟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에 힘입어 성립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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