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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57집
발행연도
2011.4
수록면
117 - 143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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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전기 왕실녀 가운데 후궁의 비구니 출가와 관련된 제 기록을 검토하여 그 실상과 불교사의 의의를 천착하고자 한 연구이다. 태종의 후궁들은 태종의 죽음 이후 십 수 명이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하며, 그 후 역대 왕의 후궁들 가운데 일부 인물들은 조선후기까지 관행처럼 비구니 출가를 계속하였다. 이처럼 후궁들이 별궁인 후궁에서 머물면서 불교신행을 하거나 머리를 깎고 출가까지 하게 된것은 더 이상 모실 왕이 없고, 개가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불교신행의 발로였다. 그러나 현재 후궁이 비구니로 출가한 인물로 태종의 후궁인 의빈 권씨, 信寧宮主[信嬪] 김씨, 숙공궁주 김씨, 세종의 후궁 愼嬪金氏, 세조의 후궁 근빈 박씨, 연산군의 후궁 숙의 곽씨 등의 인물만 기록으로 전하고 있어서 아쉬움이 크다. 이러한 후궁들의 비구니 출가 사실을 중심으로 사림정치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도 후궁들이 왕실불교의 한 축을 이루면서 명종대 선교양종의 부흥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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