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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48집
발행연도
2008.2
수록면
205 - 222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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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부터 시작된 불교계의 일본유학은 1920년대 이르러 그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신지식을 수용하고 인재를 양성하려는 불교계의 의식과 더불어 도성 출입 금지 해제 이후 확산된 일본불교에 대한 호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인의 자주성을 말살하고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에 흡수시키려는 일제의 교육정책의 영향도 있었다. 1920년에 창립된 `조선불교유학생학우회`는 이회광에 의한 한국불교의 임제종 연합기도를 저지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으나 1년 후 명칭개정을 통해 해체되었다. 이후 1921년 `재일본조선불교청년회`가 결성되어 국내 불교청년운동과 연계하고 국내불교계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들은 순회강연을 통해 신지식의 보급과 계몽에 앞장섰으며, 기관지인 금강저를 발간하고 `원효대성찬앙회` 및 `삼장학회` 등을 통한 불교신앙의 대중화를 도모하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그러한 열정을 표면화했다. 1931년 국내 단체인 `조선불교청년회`가 `조선불교청년총동맹`으로 명칭을 변경한데 이어 전국에 산재된 각 불교청년회가 스스로 그 조직을 해체하고 총동맹의 일원인 동맹체로 전환하였다. 그러한 대세에 합류하여 재일본조선불교청년회는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의 지부동맹인 `동경동맹`으로 변경되었다. 동경동맹은 정기대회, 신입회원 환영 및 졸업회원 송별회를 개최하고, 연구모임 `동맹연구회` 활동, 기관지 금강저 발간을 지속하는 등 자체적 활동과 더불어 국내 불교계와의 긴밀한 유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를 통해 1930년 초반부터 등장한 종헌실행문제, 사법개정운동, 중앙불전 폐지 문제 등 중요 현안에 대해 그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내 총동맹 내분 등 불교청년운동 부진의 영향으로 1934년 동경동맹은 해체되었다. 한편, 1930년에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인 만당 역시 동경에 그 지부를 두고 있었다. 만당의 동경지부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불교청년운동을 하던 김법린에 의해 1932년경에 조직되었다. 그 당원은 김법린, 허영호, 장도환, 최범술 등으로 당시 국내외 불교청년운동의 핵심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유학 이전부터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활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6년 결성된 `조선불교동경유학생회`는 이전의 불교유학생 단체의 전통을 계승하고, 국내 불교계의 후원으로 회관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대부분 승려의 신분이었던 일본 유학생들은 귀국 후 환속하거나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결혼을 하는 등, 이른 바 승려의 대처식육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으며, 유학파들 가운데 상당수가 중앙교무원의 간부직이나 주지를 맡으면서 일제의 정책에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학중 불교를 전공하고 뛰어난 학문적 재능을 드러낸 이들은 강원이나 혜화전문·중앙불교전문학교 등에서 강의와 연구에 몰두하여 해방 후까지도 활발한 학술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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