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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석창진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45호
발행연도
2014.7
수록면
93 - 125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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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가 상장례인 국상의례는 세종대 집중적으로 정비되었다. 세종대 국상의례 정비는 세종 초반 태종과 원경왕후의 국상을 통해 1차적으로 완료되었다. 그러나 세종 26년(1444)부터 시작된 ‘오례의주’ 편찬과 세종 28년(1446) 세종 비 소헌왕후 국상은 이전에 정비된 국상의례를 재검토하고 다시 정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소헌왕후 국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국상의례의 정비방향은 의례의 본질적인 모습을 충실히 구현하는 것이었다. 세종 초반 국상의례가 중국의 국상의례를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소헌왕후 국상의례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국상의례의 본질적인 면을 충실히 표현하고자 하였다. 죽은 자가 매장되기 전까지 모셔지는 빈전에서 거행되는 의식은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도록 의식절차를 구현하였고, 왕비의 국상이었기 때문에 왕비 생전처럼 女官이 의식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죽은 자를 매장하고 난 뒤 신주를 모시는 혼전에서 거행되는 의식절차는 슬픔의 표현에 중점을 두기보다 喪主가 슬픔을 서서히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구현하였다. 이는 혼전에서 거행되는 의식의 성격이 흉례에서 길례로 전이되는 양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종묘에 부묘되기 전까지 신주를 모시는 공간이라는 혼전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의식절차라고 할 수 있다.
소헌왕후 국상을 계기로 정비된 내용 대부분이 이후 편찬되는 국가전례서인 『세종실록』 「오례」 와 『국조오례의』에 반영되어 조선만의 국상의례를 완성시켜 갔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소헌왕후 국상의례의 절차와 내용
3. 세종대 凶禮 정비 과정에서 소헌왕후 국상의 의미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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