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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원주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46호
발행연도
2014.11
수록면
239 - 27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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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의 편성과 戰法은 步軍의 경우와 같이 임란을 기점으로 『紀效新書』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兵學指南』의 「水操程式」에 수록된 水軍편성과 戰法은 종래 조선수군의 것과는 이질적인 중국식이었다. 그러나 朝鮮水軍은 임란을 거치면서 戰術 면에서 다양한 實戰경험을 쌓으며 검증된 군사집단이었다.
임란기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처음으로 실시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合操가 17세기 수조의 정비방향으로 자리 잡은 것은 당시 전쟁의 양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17세기 초부터 시도되기 시작한 春·秋 水操의 정비 과정에서도 合操가 끊임없이 시도 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시도가 결실을 맺은 것은 삼도수군이 모두 참가하는 ‘統制營 合操’였다. 수조의 정비과정은 17세기에 끊임없이 시도되었던 양역변통의 노력이 결실을 보인 것이었다. 즉, 효종대에 雇立制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춘?추 수조를 수행할 군병을 충원할 수 있게 되었고, 양역변통의 논의가 더욱 심화되어 갈 때 통제영 합조가 이루질 수 있었다.
조선 말까지 시행된 수조는 그 형식과 내용의 대부분이 17세기 『兵學指南』의 정리와 함께 정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 과정 속에는 이전 시기부터 운용되고 있었던 朝鮮式 水軍戰法의 특수성이 여전히 반영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임란기 이순신의 진법들이 17세기에 여전히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수조는 조선식과 明식이 혼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8세기 『兵學通』시기에 이르러 조선식 진형도 중국식 진형으로 대부분 바뀌어갔다.
17세기 후반기는 삼도수군 이상 규모의 선단이 모여 실시하였던 ‘統制營 合操’가 가장 활발히 시도되었던 시기였다. 해방체제 개편과 수조정비가 17세기에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 점을 통해 볼 때 조선의 海防戰略이 다른 시기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水軍戰力의 재배치와 水操運營 조건의 變化
3. 17세기 水操運用의 특성
4.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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