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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경석 (성균관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58호
발행연도
2015.2
수록면
249 - 28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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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국제공산당의 1924년 2월 결정서의 채택 경위와 그 의의를 밝히는 데에 있다. 2월 결정서는 대립되는 두 초안의 격렬한 투쟁 속에서 태어났다. 보이틴스키와 쿠시넨이 작성한 두 초안은 조선 문제를 대하는 국제당 안팎의 두 의견 그룹을 대표했다. 그 중 하나는 국제당 동방부장 보이틴스키와 그 예하의 전권위원 및 사무관들, 한명세를 수반으로 하는 국민의회파 공산그룹의 연합 진영이었다. 다른 하나는 간부회 위원 쿠시넨과 그에 동조하는 국제당 집행위원들, 이동휘·이성 등으로 대표되는 상해파·순이시파 공산그룹들의 연합 진영이었다.
두 초안에 내재하는 차이점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민족통일전선 정책을 지지하느냐 혹은 반대하느냐의 차이로 보는 견해는 실제와 다르다. 두 초안은 민족통일전선 정책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보는 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보이틴스키 초안은 민족주의 좌우 분화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고자 했다. 그에 반해서 쿠시넨 초안은 광범한 대중적 단결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식을 선호했다. 국내 중심론이었다. 3·1혁명 이후에 조선 내지에서 발흥하고 있는 대중운동의 열기를 토대로 하여 민족통일전선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1. 1924년 1월 국제당 집행위원회와 조선 문제
2. 동방부의 정책 입안
3. 쿠시넨 초안
4. 보이틴스키 초안
5. 2월 결정서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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