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대 (중앙대) 윤서옥 (중앙대)
저널정보
중앙어문학회 어문론집 語文論集 第60輯
발행연도
2014.12
수록면
75 - 98 (24page)
DOI
10.15565/jll.2014.12.60.7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경기도와 충청도의 내륙지방에서는 추석의 민속놀이로서 거북놀이가 전승되어 왔다. 흥미롭게도 이들 놀이는 주로 청소년이 전승시켜 왔다는 점과 모의 동물로 거북이를 수수 잎으로 만들어서 활용하였다는 점이다.
거북놀이의 기록은 현재까지 역사시대의 문헌에는 찾기가 어려운데, 문헌상으로는 일제침략기의 朝鮮の鄕土娛樂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일제침략기의 기록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조선시대에는 널리 행해졌던 민속놀이로 추정되기는 하나, 현재까지 명확한 기록이 보이지 않아서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고증하기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거북놀이의 주체에 대한 논의도 이런 사정 때문인지 여러 가지의 설이 있으나 이들도 확실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朝鮮の鄕土娛樂을 보면 주로 어린이나 청소년이 주동이 되었다고 하며, 어른이나 성년으로 기록된 사례는 많지 않다. 예컨대 경기도의 경우 용인은 농민, 안성은 남자로 표현되었으며, 충청도의 홍성은 청년, 예산은 어린이와 부인 등으로 되어 있다. 이들 외의 다른 지역은 모두 어린이가 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결국 이들 놀이는 용인이나 안성, 수원 등 대개 다른 지역의 거북놀이와 유사하게 행해졌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어린이들이 주동이 되었음은 쉽사리 짐작된다.
이러한 거북놀이는 일제침략기를 거치면서 한동안 전승이 단절되다가 해방이후 1970년대에 와서 다시 복원하는 운동이 일어난다. 예컨대 음성의 윤병준 선생과 이천의 김종민 선생이 대표적인 예이다. 문제는 이들 복원과정에서 판굿과 농악의 개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즉 거북놀이의 주도적인 계층이 풍물패로 이전되는 과정에 의해서 과거의 주도층이었던 어린이들이 입지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과정은 거북놀이를 민속경연대회나 민속예술축제 등에 출품하려는 시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어린이가 주동이 된 거북놀이의 경우에는 놀이판의 형식화가 없었지만, 이들과 결합하면서 제의과정과 판굿의 연행방식을 갖추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의 연행방식은 대개 이런 틀로 고정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특히 연행의 변화양상은 이들 놀이를 농촌체험 프로그램으로 참여하여 지역 민속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려는 방식으로 탈바꿈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동시에 단순히 연희되는 것 뿐만 아니라, 거북이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과거의 정형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통 민속놀이의 계승 발전에 유의미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서에 대신한 거북놀이의 역사적 유래와 상징
2. 거북놀이의 전승지역과 그 전승내용
3. 거북놀이의 전승 특징과 그 의미
4. 결-창출된 거북놀이의 민속문화적 특징과 그 의미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5)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710-001023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