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朱甫暾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76
발행연도
2014.12
수록면
167 - 202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신라 진흥왕대에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한 대표적 인물로서는 거칠부를 손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를 본격적으로 다룬 적이 없다는 사실은 생각 밖의 일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거칠부의 활동상에 대해서 특별히 그의 출가와 연관지어 살펴봄으로써 실상에 접근하여 보고자 하였다.
거칠부의 집안은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서 공인되기 오래전부터 각별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관료로 나아가기에 앞서 승려의 길을 걸었던 독특한 경험을 하였다. 어린 나이로 출가한 배경에는 집안의 분위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전국을 자유롭게 주유, 유랑하면서 습득한 그 시절의 체험은 관료로 나아갔을 때 곧장 정책에 반영되었다. 특히 고구려 승려 혜량과의 운명적 만남은 그를 실천에 옮기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551년 친정을 개시하면서 연호를 開國으로 내건 진흥왕은 혜량을 국통으로 맞아들여 그에 어울리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진흥왕대는 이제 막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서 공인된 상태였으므로 기반은 제대로 갖추어지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진흥왕은 고구려 망명 승려 혜량의 주장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취약점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대표적 호국도량인 황룡사의 창건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로써 불교는 정치와 밀착되어가 명실상부한 불교식 왕명시대를 구축하여 갔다. 진흥왕은 스스로 신라의 전륜성왕으로 자처하였으니 그럴 만한 이론적 사상적 근거는 거의 대부분 혜량에게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거칠부는 관료로서 기반을 굳혀가고 특히 진흥왕의 핵심 보좌역을 수행하게 되면서 화랑제의 창설을 건의한 것 같다. 화랑도 교육의 중심적 내용은 건의자 거칠부의 성장 과정 및 출가의 경험으로부터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거칠부는 어린 출가의 경험을 배경으로 진흥왕 일대를 통해 숱한 업적을 쌓음으로써 삼국통일에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出家의 배경과 가계
Ⅲ. 出仕와 출가의 경험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6)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911-001044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