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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朴現圭 (順天鄕大學校)
저널정보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東亞人文學 第28輯
발행연도
2014.8
수록면
215 - 24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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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대중국 사행록에 기술된 비문이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졌고, 사행자가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검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자료대상은 일차적으로 1790년(정조 14) 건륭제 팔순 만수절에 참석한 진하사절 황인점 일행이 조선 사행자로서 미답의 길인 外路구간, 즉 二道井에서 구관대문을 거쳐 熱河로 이어지는 구간에 세워진 비석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義縣 九道嶺鎭에는 공주릉이 있다. 근자에 발굴된 <溫莊長公主壙誌>에 의하면 매장자는 홍타이지의 딸 溫莊長公主이고, 비문 작성자는 강희제이다. 공주릉의 매장자에 대해 유득공은 지역민으로부터 老王(강희제)의 딸이며 현 황제(건륭제)의 고모라고 잘못된 정보를 입수했다. 서호수와 유득공은 조양 관제묘에 놓여진 <大遼興中府靈感寺釋迦佛舍利塔碑>를 보고 사찰과 탑의 유래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문헌에 기술된 비석의 전문을 보면 서호수와 유득공의 기술이 정확했음을 알 수 있다.
열하문묘 대성전 앞에는 1778년(건륭 43)에 승덕부(열하와 육청)의 행정지명을 변경한 사실을 담은 <乾隆四十三年上諭碑>가 세워져 있었다. 이 비석의 비문을 살펴본 서호수는 건륭제 ≪癸卯集≫에서 1776년(건륭 41)에 변경했다는 기록과 다른 점을 발견하고 정보 혼란에 빠졌다. 열하문묘는 1776년(건륭 41)에 착공되었고, 행정지명의 변경은 1778년(건륭 43)에 이루어졌다. 또 대성전 앞에는 1788년(건륭 53)에 건륭제가 친히 적은 <御製平定臺灣告成熱河文廟碑>가 세워져 있었다. 이 비석에는 건륭제가 福康安 등을 보내어 임상문으로 발발된 대만 사건을 평정한 공적이 적혀 있다. 이때 복강안을 도와준 대만 원주민들이 만수절 행사에 참여했다. 서호수와 유득공은 이 비석을 통해 임상문 사건에 따르는 대만평정의 과정과 대만 원주민이 참석하게 된 배경을 확인하였다.
황인점 일행은 청나라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외부공간에 노출된 비석을 좋은 정보수집 대상물로 삼았다. 이들이 친히 본 비석의 정보는 거의 정확하게 전록되었으나, 제삼자를 통해 입수한 것은 일부 오류가 있었다. 이밖에 비문 내용과 문헌 기록이 달라 정보 혼돈을 겪기도 했다.

목차

<국문초록>
Ⅰ. 序論
Ⅱ. 1790년 黃仁點 일행의 外路구간 비석
Ⅲ. 결론
【參考文獻】
<Abstract>

참고문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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