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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진교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비교민속학회 비교민속학 比較民俗學 第54輯
발행연도
2014.8
수록면
343 - 37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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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라남도 곡성군에 위치하고 있는 한 마을 동계의 역동성을 통해, 일제강점기 식민권력의 침투와 그에 따른 마을 차원의 대응방식을 살펴보고자 했다. 나아가 동계의 변화과정 속에 전통성과 근대성, 자율성과 타율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의 문화적 함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탐색해 보고자 했다.
일제강점기 식민권력은 민중들의 삶과 마을사회의 운영에 있어서 동계가 핵심적인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나아가 식민권력은 동계에 대한 민속지식을 활용해, 마을에 대한 식민정책의 관철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 처음 결성된 봉정 대동계는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강조하고 있었으며, 전통적인 방식의 동계와 매우 유사한 형식을 띄고 있었다. 이후 1926,7년 그리고 1933년 새로운 규약을 추기(追記)하는 방식으로 동계를 개편해 나가며, 1939년 경 해산하게 된다. 이러한 개편과정은 당시 식민권력의 마을 침투 그리고 그에 따른 마을 사회의 재편과 일정하게 대응되는 것이었다. 시기별 추기된 규약을 통해 식민권력의 마을 내 관철수준이 점차 심화되어가고 있으며, 일제에 의한 자본주의적 질서가 마을 내에 이식되어가는 모습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식민권력의 정책이나 통치기구의 영향력이 봉정마을에 일방적으로 관철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석곡금융조합에 동계 기금을 예치할 것을 명문화하는 1933년의 개편에서 식민권력의 영향력을 읽어 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동산과 동답과 같은 토지구입에 대하여 예외규정을 두어 나름의 자율성을 살리고자 했던 봉정마을 사람들의 의도를 포착해 볼 수 있다. 한편 1937년 봉정회관의 건립과정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식민권력의 농촌정책을 수용하면서도, 실천의 과정에서는 마을과 공동체의 이해를 어떤 방식으로 반영하고 있는가를 파악해 볼 수 있다. 봉정회관의 건립에는 당시 마을 내 주요 사회조직이었던 농촌진흥실행조합, 대동계, 청년회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산림법과 같은 식민지법을 어겨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은, 실천의 국면에서 마을과 공동체의 이익을 반영하고자 했던 봉정마을 사람들의 의도를 엿 볼 수 있다.
정리하면 식민권력의 지배의도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나름의 의도와 판단을 가지고 적극적/수동적 수용, 적극적/수동적 저항, 명시적/암묵적 타협과 조정 등의 과정을 거치며 마을사회를 운영해 나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일제강점기 봉정 대동계의 위상과 의미는 전통과 근대, 자율과 타율이 만나는 변주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동계 연구의 좌표 설정
Ⅱ. 봉정마을의 사회문화적 기반
Ⅲ. 마을사회의 재편과 대동계의 변화
Ⅳ. 봉정 대동계의 역동성과 다중성
Ⅴ. 전통과 근대, 자율과 타율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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