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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방용철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5호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205 - 24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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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중엽 이후 급속히 확산되어간 신라의 횡혈식석실분은 지배계층의 묘제 변화는 물론 왕경의 정비, 불교 관념의 보급 등과 긴밀히 연동한 문제로 이해되고 있다. 최근 새롭게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동천동고분군의 양상은 해당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사점을 일부 제공하고 있어 주목된다. 동천동 산13-2번지 일원 유적에서 새롭게 확인된 횡혈식석실분들은 일정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던 피장자들의 분묘였음에도 열악한 입지조건을 감수한 상태에서 조영되었다. 이들이 신라의 지배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묘역의 입지 선정에 관한 문제는 의문이 남는다.
더욱이 동일한 위계로 파악되는 동천동 354번지 유적의 횡혈식석실분들은 소규모 범위에도 불구하고 집약적인 분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친연성을 확보하고 있던 집단의 일관된 계획에 따라 분묘 조영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동천동 354번지 유적이 동천동 산13-2번지 일원 유적과 동일한 위상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의 고분군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묘역조성에 차별적인 강제력이 적용되지는 않았을 듯하다. 해당 고분군이 신라 사회의 지배계층을 피장자로 하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입지는 피장자 자신이나 후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三國遺事》의해편을 구성하고 있는 蛇福不言 설화는 이런 시각에서 주목된다. 대략 7세기 중후반 신라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현재 소금강산 일대에 대한 인식이 간취되기 때문이다. 연화장 세계의 입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蛇福母의 장지는 사복 및 원효의 언급을 감안할 때 애초부터 불교적 연원이 깊었던 곳이라 볼 수 있다. 설화가 7세기 중후반 무렵에 성립되었다는 점에서 소금강산 일대에 대한 신라인들의 인식은 훨씬 앞선 시기부터 공유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결국 소금강산 일대는 6~7세기를 지나는 동안 死後세계의 안식처로 신라인들에게 깊게 각인되었으며, 불교적 이상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묘역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당시 급격한 묘역변동을 겪고 있던 신라 왕경의 전체 양상을 살피는 데에도 구체적 사례로써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東川洞古墳群의 造營과 위상
Ⅲ. 王京內 墓域의 변동과 불교적 來世觀
Ⅳ. 불교적 來世觀의 확산과 小金剛山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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