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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채미하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5호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5 - 4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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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신라 눌지왕대 미사혼 구출을 전후한 신라의 대내외적인 상황과 신라의 국가 발전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미사혼이 왜에 간 시기에 대해《삼국사기》에는 402년(실성왕 원년)으로《삼국유사》에는 390년(나물왕 36)으로 나온다. 하지만 402년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백제와 왜는 군사적으로 연합한 상태인 점으로 미루오 미사혼이 倭에 파견된 시기는 나물왕대로 보았다. 그리고 나물왕이 미사혼을 왜에 보낸 이유는 4세기 말 국제 정세 속에서 왜와 군사적 협력을 구축하여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한편 미사혼을 구출하기 위해 눌지왕은 중앙과 지방의 유력자들을 "召集"하였고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제상이 추천되었으며 제상에 의해 미사혼은 425년(눌지왕 10) 왜에서 구출되었다고 하였다. 제상은 5세기 초 왜와 백제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여 미사혼을 구출하였는데, 이것은 삽량주간·삽량군 태수라는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제상은 日氣와 주변 신라인의 도움을 받아 미사혼을 구출하였다. 이러한 제상은 김씨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인물로 친눌지계라고 하였다.
실성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눌지왕은 김씨 왕실 중심의 권력을 확립하려고 하였고 당시 국제 정세의 변화도 꾀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눌지왕의 정치적 도전은 친눌지계인 제상의 활약으로 성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신라는 김씨 왕실을 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왜와 독자적인 정치 교섭을 하였으며 백제와는 협력하였고 점차 고구려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이것은 눌지왕이 아우들이 돌아온 후 자신의 뜻을 나타낸 憂息曲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나물왕대 미사흔의 倭
Ⅲ. ‘辯士‘ 제상과 눌지왕의 ‘召集‘
Ⅳ. 제상의 미사흔 구출과 그 이후의 신라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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