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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수 (동서대학교) 김희호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91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113 - 154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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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678년부터 1789년까지 경상도 단성현 8개面의 호적대장과 1777년부터 1861년까지 경상도 언양현 6개面호적대장의 장기시계열 자료를 사용하여, 두 지역에서 고공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비교해 보았다. 특히, 단성현 호적과 언양현 호적은 시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고공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장기적으로 비교하여 관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본 연구의 결과에서 18세기 중반 이후의 두 지역 호적에 명기된 고공은 日雇, 季雇와 같은 단기고공이 아니라 대체로 장기고공이며, 고공의 성격이 시기에 따라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고공의 노동특성이 변화하는 시기는 1735년과 1798년을 기준으로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여 보았다. 1735년 이전에는 고공이 농업생산을 목적으로 비교적 신분이 자유로운 남성위주 임노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735년 이후에는 고공이 신분적, 경제적으로 점차 예속적인 노비화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1735년 이후 고공이 노비에서 나타나는 특성인 여성화, 연소화 되었으며 고공계약은 장기화되고 신분적, 경제적으로 보다 예속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1798년 이후에는 고공의 특성이 그 이전과 유사하고 고공계약도 장기화되었지만, 고공의 도망은 오히려 대폭 감소하였다. 그 이유는 우선, 19세기에 와서 신분제 해체가 더욱 진행되어 신분적 예속성이 많이 완화되었고, 다음으로 고공정제의 개정으로 인해 고공계약이 5년 이상 장기화되었을 뿐 아니라 호적에 입안된 고공의 다수가 생계가 곤란한 나이 어린 여성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Ⅱ. 고공법제와 고공계약
Ⅲ. 단성현과 언양현 호적자료와 고공인구
Ⅳ. 고공의 사회경제적 성격: 단성과 언양 비교
Ⅴ. 고공의 출입과 고주호 신분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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