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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강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55호
발행연도
2014.5
수록면
117 - 163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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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충렬왕의 재위기간(1275-1307)에는 여러 다양한 악곡과 가무가 창작, 연주되었고, 이에 대해 국문학계와 국악학계가 여러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를 통해 충렬왕대의 음악이 전란과 사회분열을 극복하고, 이전 상황의 회복을 기도한 것이었음이 지적된 바 있다.
다만 음악정책의 맥락 변화를 따지기 위해서는, 당시의 여러 상황들에 대한 역사적 진단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쌍화점>으로 대변되는 1270년대말의 시대상황과 과제, <태평곡>과 “상화”관행에서 드러나는 1290년대 중~후반 충렬왕과 신료들의 문제의식, 그리고 <쌍연곡>에서 드러나는 13세기말~14세기초의 상황 등을 검토하였다.
충렬왕대 30여년을 시기구분해 본다면, 원제국과의 관계가 시작되던 혼선기, 전란종식후 외교관계가 형성되던 안정기, 그리고 원제국 중심의 질서가 구축 되고 그러한 세계질서의 일부분으로서의 고려의 위상이 정립되던 시기 등으로 세분될 수 있다. 충렬왕대의 음악정책은 각각의 시기에 전통 수호, 국정 세련화, 외교관계 정립 등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되며, 시기별로 속악(향악), 당악, 아악이 차례로 활용되었음이 흥미롭다. 아울러 충렬왕의 음악정책이 원제국 음악정책의 개시에 발맞춰 시작된 후, 시기별로 나름의 연동성을 보였던 점도 주목된다.
1270년대의 향악 및 1290년대의 당악 정비는 고려 속악 및 의종대 당악이 고려말 공민왕대로 이어지는 것을 가능케 하였고, 1300년대의 양상 변화는 충선왕대 음악정책의 ‘아악’으로의 중심 이동을 추동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충렬왕대를 고려후기 음악정책사의 시발점으로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270년대말의 <쌍화점>제작-속악(향악)진흥을 통한 전통의 보전과 사회안정·통합 추구
3. 1290년대중반의 <태평곡>과 ‘상화’관행-당악 위주의 음악정책을 통한 문물 일신의 노력
4. 1300년대초의 <쌍연곡>-원제국 중심 질서의 인정에 따른 아악 지향의 시작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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