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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흥주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실천민속학회 실천민속학연구 실천민속학연구 제23호
발행연도
2014.2
수록면
115 - 163 (4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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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풍물굿 재생기’를 맞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1의 풍물 재생기’를 가능하게 했던 1980년대 풍물운동의 성공요인과 한계를 검토하였다. 양적확산뿐만 아니라 굿으로서의 가능성을 크게 보였던 1987년 6월항쟁 이전까지의 서울지역의 풍물, 그 중에서도 작품에 대해 굿성이라는 관점에서 양식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시기의 풍물작품은 개별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창작을 시도하더라도 마을굿의 전형을 적극 수용하는 특성을 보였으며, 기존의 풍물과 대동놀이를 마을굿 구조에 담았을 경우, 특별한 창작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풍물이 굿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비언어적인 요소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풍물의 특성을 잘 활용한 작품이 굿성 발현에 효과적이었다. 이는 신명의 원천과 발현양상에 대한 기존 풍물과 굿에 대한 이해가 일정정도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인식토대 위에 당대의 문제의식을 마을굿 구조 속에서 담아내는 ‘재창조’ 작업을 과감하게 실천했다. 이들은 마을굿, 그리고 마을굿을 이루는 기재로서의 대동놀이, 잡색놀이를 활용한 메지시 전달에 주목하였다. 이를 ‘재창조’의 창작기조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굿과 풍물 및 탈춤에 대한 문헌을 통한 학습뿐만 아니라 직접 굿이 이뤄지는 생활현장으로서의 민속과 만나는 작업을 꾸준히 수행한 결과였다. 무당을 직접 찾아 기능전수를 하는 과정, 풍물굿을 하는 농촌현장을 찾아 체험하는 민속답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됐으며, 노동운동현장과 농민운동현장 속에 활동가로서의 생생한 경험이 민중들의 미의식을 자신들의 미의식으로 체화해나가는 과정이 밑거름이었다. 이 체험들 간의 자연스런 접맥과 결합이 만들어낸 성과이며, 이는 기존 마당극의 창작기조나 형상화 방법과 차별성을 보여주게 되는 요인으로서의 구성이었다.
그러나 1회적인 판벌림으로 끝나거나, 굿에 대한 이정도의 식견과 작품형상화능력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지 못했으며, 자기모순에 의한 한계로 인해 향후 풍물굿운동과 그 작품기조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다. 특히, 운동이 꿈꾸는 상상공동체를 강요하기 위한 ‘작품’으로 인식하게 한 점, 이를 공연하기 위해 민속이나 굿을 기계적으로 사용했던 운동엘리트들의 인식과 자세가 한계의 근원이었다. 굿 양식의 기계적인 사용은 생활로서의 굿에 대한 이해가 일천함으로서 오는 결과였으며, 민중문화로서가 아니라 또 다른 고급문화를 양산하게 한 운동엘리트들의 오만한 목적의식이 결과적으로 자기모순과 한계를 만들어냈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1980년대 풍물운동에서 ‘창작’ 상황과 ‘작품’ 현황
3. 1980~1987년 사이에 나타난 창작성 풍물작품들의 실제와 굿성
4. 풍물창작자들의 창작의식에 담긴 굿성과 그 특징
4. 나가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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