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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은정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06호
발행연도
2012.6
수록면
1 - 61 (6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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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도시절 통치의 핵심영역인 경주 都內는 고려 태조이래 邑內?外로 분리된 데다, 현종 3년에는 邑內를 중심으로 성곽을 축성하게 되었다. 당시의 축성은 현종 2년 동여진 침입에 대비한 방어차원이긴 하나, 차후 경주의 영역정비와 新邑基건설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경주의 서북방면에 치우친 초기금성터에 읍기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월성일대가 舊邑基지역으로 기능했다. 경주의 읍기가 월성방면에서 초기금성터 쪽으로 옮아가는 양상은 발굴자료를 통해서 확인가능하다. 대체로 고려전기에는 월성일대에서, 고려중기 이후로는 초기금성터에서 관련 유물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현종 이후 경주 新邑基건설은 성곽 축성 즉시 착수되지는 못했다. 경주세력의 제어와 공사 기일의 문제 등 제반 여건으로 인해 기존 월성일대의 기간시설물을 활용하는 절충 시기가 잠시 있었다. 이때 경주 舊邑基에 해당하는 월성일대 사찰과 재정?유통시설이 활용되었다. 문종전후해서 경주는 점차 지방도회로서 국가가 강제하는 경관을 구축해 나갔다. 경주 신읍기인 초기금성터 주변으로는 강한 구심력을 보이는 資福寺와 客舍가 배치된 것이다.
新邑基의 관향은 외방관도와 배후촌락과의 통행을 참작해서 결정되었다. 경주 신읍기의 도로는 각 성문을 연결하는 십자형태로서 서북방면의 慶州道와 만난다. 경주도의 진행방향에 맞춰 인근의 속현도 신읍기 외곽에 차례대로 배속되었다. 또한 新邑基에서 서쪽?북쪽 방면으로는 통행편의를 위해서 細路가 신설되거나 자연 촌락의 생성이 두드러졌다.
경주 新邑基에서의 도로는 월성일대의 舊邑基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도로의 개설연한도 늦고 노폭도 좁은 편이다. 기존 왕경대로를 개?보수하던 차원과는 달리 新邑基서?북쪽으로는 새로이 자연적인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 小路는 이전부터 있어왔던 촌락과의 주요통로와 서북방면에 신설된 촌락 사이의 연결을 긴밀히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요컨대 현종 3년 초기금성터 방면에 성곽이 始築되고 난 후 문종 전후해서 경주 新邑基지역은 국가차원의 권위체계 강제와 이에 추수하는 변화로 인해 차츰 지방도회로서의 전형을 갖추게 되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경주의 邑基 이전
Ⅱ. 월성일대 도시기반의 활용·변용
Ⅲ. 초기금성 방면 新邑基의 景觀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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