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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윤오 (연세대)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09호
발행연도
2013.3
수록면
187 - 231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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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후기 권농책의 추이를 정부지배층의 전통적인 방식과 실학자들의 개혁적인 방식을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전자의 경우는 완만하게나마 장기 지속적인 변화를 보인 반면에 후자는 대단히 현실적이며 개혁적 성격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나타났다.
우선 정부층의 권농정책은 제천의례와 농경의례를 통해 조선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 이 같은 농경의례는 조선후기 세계관이 변화함에 따라 조선국가 중심의 자존적인 의례로 변화되고 있었다. 영조와 정조대의 친경의례는 기왕의 형식적인 제례를 벗어나 농업현장에서 구현되는 방식으로 바뀌어 나갔고, 정조는 남단[풍우뇌우단]의 의례를 곧 세조대 시행했던 환구단의 제천의례로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이 대표적 사례였다. 비록 환구단 의례가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의례라는 이유로 축소되었지만, 그것을 농경의례로 분화시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존적인 의례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한편, 실학적 지식인들의 권농대책은 근본적으로는 토지개혁을 지향하고 있었다. 따라서 주자권농문에 표현된 지주제 중심의 권농책과 다른 현실 개혁적인 논의로 나타났다.
반계의 경우 적전(籍田) 친경(親耕)을 간소화시키는 가운데 정전제를 응용하였고, 특히 진전(陳田) 개간이나 수리(水利) 시설 확보를 권농정책의 요체로 삼았다. 다산의 경우는 목민관이 농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개혁적인 발상을 제시하고, 나아가 농민이 부유해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牧民心書』에서는 현재 시행할 수 있는 개간문제나 농기구, 농우(農牛)를 활용하는 문제 외에도, 앞으로 정전제도가 시행된 후 시행할 문제도 같이 언급하고 있었다.
양자의 권농 대책은 극단적인 방안이었지만 상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영조나 정조의 경우 반계의『磻溪隨錄』을 다시 간행하도록 한 것은 실학자들의 권농책에 대해서도 국왕들이 참조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정부지배층의 의례적 권농책과 그 변화
Ⅱ. 실학적 권농책의 대두와 성격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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