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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정수 (건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11호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41 - 81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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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왕조의 국가운영 체제 정비기라 할 태조~세종 대를 중심으로 나무의 소비 증가와 산림 개발의 양상, 그리고 소나무 중심의 중송정책에 대해 살펴보고 그 의미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조선 왕조의 건국이라는 시점에서 궁궐, 관아, 종묘, 도시가옥 등의 건축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왜구의 잦은 출몰을 막기 위해 병선을 건조하고 관리해야 했다. 건축이나 병선은 모두 소나무를 중심으로 목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 땔나무 역시도 소나무가 많아 그 소비를 분산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산업용, 생활용, 난방용 나무 소비는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이처럼 나무 소비의 중심에는 소나무가 있었다. 또한 왕조가 안정되어 가면서 농지개간이 확대되었다. 적극적인 권농의 결과였다. 동시에 강무장과 목장이 설정되어 개발되었다. 필요한 부분이었으나 이는 숲의 파괴를 야기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나무소비와 숲 개발 방식을 조정할 필요가 대두되었다. 태조~세종 대를 거치면서 성립된 重松政策이 이에 해당하였다. 소나무 수요와 소비 증가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편 것이다. 풍수론에 따라 소나무의 가치가 더욱 주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소나무 중심의 단순림의 전개로 이어져 피해를 가져올 수 있었다. 송충이에 의한 소나무 피해가 이에 해당하였다. 그런데 세종 말 문종 대부터는 송충이의 피해가 줄어들었다. 중송정책에 따른 큰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하였다. 그동안의 금산정책과 함께 沿海州縣등에 宜松地를 지정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조치는 결국 숲 전체로 보아서는 소나무 중심 단순림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조선 초기 숲은 소나무 중심 소비 증가로 인한 피해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태종 및 세종은 소나무를 중심으로 하는 금산 및 중송정책, 다른 여러 나무들의 소비를 함께 유도하고 관리토록 하는 방식을 제시하였다. 때문에 조선 초기 숲은 소나무 중심 단순림 형성을 피하면서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겨진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나무 수요의 증가
Ⅱ. 숲 개발 확대 양상
Ⅲ. 重松政策의 성립과 한계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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