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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형중 (부산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90집
발행연도
2014.3
수록면
155 - 18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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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군만호부는 원(元)의 지배 하에 있었던 고려말 충렬왕대에 元의 제도를 모방하여 수도 개경의 내외를 순찰하며 수도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설치된 순라군(巡邏軍) 즉 경찰부대였다. 그러나 점차 발전함에 따라 그 설치목적이 변질되어갔고 명칭도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로 개칭되면서 그 맡은 바 업무와 권한도 무한대에 이르렀다. 이러한 순군만호부가 고려말에 몇 번의 명칭변경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왕조 성립에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조선왕조 초기 순군만호부는 순위부→의용순금사→의금부로 개칭되는 과정에서 경찰상층부 구조와 하부구조체제가 완전히 이루어져 원시적이나마 오늘날과 같이 근사(近似)한 경찰체제를 갖춘 최초의 경찰기구였다는 점에서 경찰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순군만호부의 조직과 기능은 일반적으로 과소평가되는 측면이 강한 반면 오히려 조선 후기의 포도청에 관한 조직과 기능적 측면이 과대포장된 면이 적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순군만호부는 순작(巡綽)과 순위(巡衛:왕실시위근무), 포도금란(捕盜禁亂:도적을 잡고 폭행이나 반역음모 방지), 국왕의 사적 도구로의 이용, 권력과 밀착된 권한 남용, 고문 등 무소불위의 권한과 업무범위로 인하여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순군만호부에 대한 축소과정과 역사적으로 소멸되는 결과는 순군만호부 자체가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 결과 국왕과 타 기관의 견제 등으로 인하여 수십년동안 독자적인 경찰기관은 존재치 않고 순찰활동은 군부(軍部)에서, 그리고 포도금란의 임무는 사헌부, 형조, 승정원 등 타 기관의 해당관련 업무로 분산. 이관되는 비운을 겪게 된다. 이처럼 순군만호부는 후일 포도청 성립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도적이 성행할 때는 임시로 포도부대(捕盜部隊)를 조직하여 운영하다가 평온해지면 없애고 하는 행태를 되풀이 하다가 포도청의 성립연대조차 아직도 정확히 구명(究明)치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인다. 따라서 본 연구는 순군만호부가 한국경찰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 역사적 의미와 교훈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찰해보고 그 공(功)과 과오를 되짚어보는 계기의 장을 마련하고자 함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순군만호부의 성격과 특징
Ⅲ. 순군만호부 체계의 변천과정과 그 기능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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